중국에 처음 살게된 시점이 벌써 7-8년 전이었는데, 그때의 중국은 당시 한국보다 훨씬 더 디지털 페이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 중국 카톡과 같은 위챗이라는 앱에서 이미 디지털페이가 엄청 일반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띠디라고 불리는 택시 서비스 앱도 엄청 촘촘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지도도, 한국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세부적이었고 결제도 엄청 빨랐었다.
진짜 신선했던 것은 1-2위안 짜리를 판매하시는 노점상 분들도 위챗 큐알코드를 코팅출력하여 핸드폰으로 결제 가능하게 이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걸하는 분들도 모자에 큐알코드를 출력해서 붙여뒀었다. 디지털 페이 구걸이라니 당시 엄청 의아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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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그렇게까지 디지털페이, 웹, 앱서비스가 발달한 이유는 세금 및 개인에 대한 빅데이터를 최대한 소유해 통제력을 갖기 위해서다. 개개인의 모든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렇게까지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확실히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한 예로,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기독교나 종교관련 내용, 설교영상을 위챗 메세지를 보내면 전송이 안되거나, 에러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으로 아예 나오고 나서는 종교감시(?)가 더 심해져서 갑자기 쫓겨난 선교사님들도 많고, 교회가 감시당하는 레벨도 더 높아졌었다고 했다. 신앙서적이 한국에서 배송이 안되는 것은 물론, 성경책 등 있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추방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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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예로는, 시진핑이 당시 살던 곳에 방문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 예방접종 때문에 한국에 몇달 있다 들어갔는데, 와..다시 돌아가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그 몇달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 도로가 완전 싹-닦여 있었고, 길가 쓰레기통까지 완전히 새것으로 싹 다 바뀌었으며 해안 빌딩들은 도시 야경이 가능하게 조명 등이 완전 셋팅되어 있었다.(지금은 아예 야경 쇼가 관광명물이 되었다)
치안을 위해 조선족이나 위험 지역은 공안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거주자와 등록자가 같은지 다 확인 하였고, 심할때는 집안, 차안까지도 검문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해당 구역마다 깨끗하게 거리가 정돈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해당 관리 공무원이 바로 잘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외관을 싹 바꿔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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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황제가 행차한다면 이렇게 준비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몇 달 안되는 시간동안 도시 외관이 이정도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면서 신기했었고, 이런 시스템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떻게 되는건 일도 아니겠다..란 생각도 들었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한국과 중국에서의 환경이 크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나 또한 그 통제권 안에서 절대 자유로울 순 없음을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