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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거리가 필요한 이유

슬기로운 은퇴생활 - 하루 한 줌의 의미

by Erica


긴 하루를 채울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하루가 너무 길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서 요일 감각이 없어진다."


은퇴 후 약 3주간은 너무 좋다. 눈 뜨자마자 바쁜 출근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마음도 여유롭다. 출퇴근 시간에 길에 막히는 차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저 안에 있지 않음에 얼마나 감사의 마음이 드는지, 차가 막힐수록 자유의 달콤함은 더 커진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고,

불금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주말의 기대도 사라져버린다.

놀아도 그다지 즐겁지 않고,

하루가 끝날 때면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한 후에도 결국 일을 찾게 된다. 그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소일거리란, 시간 낭비가 아닌 ‘존재의 감각’이다.


‘소일거리’는 단순히 시간 때우기나 무조건적인 알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일거리란,

✔ 꼭 돈을 벌기 위한 일도 아니어도,

✔ 세상에 거창하게 드러나는 일도 아니어도,

✔ ‘내가 오늘 하루 뭔가 했구나’ 싶은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일,

✔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일,

✔ 아침에 눈 뜨면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는 동네 도서관 자원봉사,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브런치 작가,

누구에게 보여주진 않더라도 혼자 쓰는 글쓰기,

텃밭 가꾸기, 집안에 화초 키우기,

악기 배우기, 그림 배우기,

집주변 둘레길 걷기,

하루 5킬로 뛰기 등,

딱히 잘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이거나 재미를 느끼는 일’이면 충분하다.

돈이 생기는 일이면 더 좋겠지만, 생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돈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생산성, 가성비 같은 거 생각하지 않는 내 존재의 의미를 채워주는 일

그것이 바로, 은퇴 후 삶의 소일거리다.





은퇴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


전업주부로 있던 사람들도 아이들이 모두 크고 나면 둥지 증후군이라는 걸 겪는다. 하물며, 집안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이라는 일상의 루틴 속에서 쳇바퀴 돌듯 바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바쁘던 일이 사라졌을 때의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던 급여 숫자가 사라지면서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갑자기 한가해진 삶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휴식 같은 삶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으로 가득 차며 힘들어질 수 있다.


은퇴 후 일상에 리듬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기력증뿐 아니라 우울증, 치매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즐겁게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 찾는 것이 중요하다.


커다란 사명감이나, 완벽한 준비도 필요 없다.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하루 중 "그 일" 하고 즐겁게 생각나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소일거리에서 "일"은 선택이지만,

"의미"는 필수이다.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톰 스토파드


은퇴는 끝이 아니라 자녀와 배우자 말고 나만을 생각하며 새롭게 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시작이다.

인생의 숙제를 대부분은 끝낸, 좀 더 자유로운 인생 2막의 시기로 꼭 성공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 하나, 하루를 활기차게 만들어줄 작은 리듬 하나, 권태롭지 않게 인생에 에너지를 채워줄 만한 즐거운 일 하나,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작은 일 하나로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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