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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Sep 02. 2021

대충 살자, 밥그릇 하나로 일주일 먹는 ㄱㅇㅈ 처럼!

“집에서 세 끼 다 먹은 거야?”


“어”


“그런데 어떻게 설거지가 밥그릇 하나랑 젓가락 한 세트밖에 없어?”


“아침 먹고, 놔뒀다가, 그걸로 점심 먹고, 다시 뒀다가 저녁까지 먹은 건데.”


“세끼 내내 같은 밥그릇이랑 젓가락 사용한 거라고?”


“어, 깨끗하게 먹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볼 일이 있었던 어느 날,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을 해놓고, 전날 만들어놓은 마른반찬 3종류까지 반찬 통에 담아 놓고는 볼일을 보고 저녁에서야 귀가했다. 혹시 남아있는 설거짓 거리가 있는지 싱크대를 둘러본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솥의 밥을 푸기 위해 밥주걱과 된장찌개를 떠먹기 위해 대접이 있어야 하고, 국자가 필요할 것이고, 냄비의 오징어 볶음을 덜기 위해 젓가락 한 벌 그리고 마른반찬들을 덜기 위해 접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으니, ×3배 숫자의 그릇들과 주방 도구들이 나와 있고, 그것들이 설거지통에서 씻어져 건조망에 들어가 있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혹시 밥그릇 하나 설거지 안 해서 화가 났다고 착각한 신랑은, 

“지금 설거지하려고 했어.”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세끼를 먹는데 밥그릇이랑 젓가락 하나씩밖에 안 썼는지 궁금해서 그래.”


그제야 알았다는 듯 자랑스러워하는 신랑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오십까지 혼자 살았잖아. 나 총각 땐 밥, 김치, 계란 프라이만 있으면 밥 먹었었어. 일주일 내내 그렇게 먹은 적도 있었거든. 그때도 딱 밥그릇, 프라이팬, 젓가락 딱 하나씩만 썼어. 한 끼 먹고 물에 담가 놨다가 다음 끼니때 물로 쓱 헹궈서 다시 쓰고, 또다시 쓰고 그랬어. 얼마나 편한데. ”


일품요리를 하는 날이면 가끔 신랑은 나에게, 

“난 김치볶음밥 한 그릇밖에 먹은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설거지가 많아?”

라고 투덜대며 설거지를 해줬다. 자기가 하면 냄비, 가위, 수저 하나씩만 쓸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그 말을 들은 체도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대충 살자!  
밥그릇 하나 젓가락 하나로
일주일 동안 밥 먹고 살 수 있는
ㄱㅇㅈ(신랑 이름의 초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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