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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Mar 24. 2023

손목시계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40여 년 전 청량리에서 중앙선 열차를 탔다. 목적지는 원주.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고 대학을 함께 다녔던 후배들과 1박 2일로 MT를 갔다. 치악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저녁을 먹었다. 젊은 장정이 등산을 마치고 식사를 했으니 얼마나 꿀맛이었겠는가? 거기다가 막걸리까지 곁들여 ‘부어라 마셔라’ 했기에 음식값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7명이 회비로 낸 걸 거의 다 쓰고 각자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추가로 거뒀다.


잠을 자야 하니 치악산 아래에 있는 예약한 숙소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밥을 먹고 남은 회비와 추가로 거둔 돈을 합쳐도 숙박비가 부족했다. 후배들은 모두 꽁무니를 빼며 ‘나는 모르겠다’라는 태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아차린 여관 사장님은 우리를 윽박질렀다.

“돈이 없으면 여기서 잘 수 없으니 그만 나가라.”

6명의 후배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우리 모두 여관에서 쫓겨나야 할 형편이니 가장 선배인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떡하지?’라고 속으로 고민하다가 여관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 시계를 맡길게요.” 

사장님이 내 손목을 쳐다보는 걸 느끼면서 잽싸게 시계를 풀어서 내밀었다. 시계를 이리저리 살피던 사장님이 말했다.

“이걸로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

“사장님, 우리가 학생인데 형편을 봐주세요. 나중에 돈은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되느니 안되느니 하며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내 시계를 맡기고 우리 7명은 그 여관에서 잠을 잤다.     


   중학교 2학년 때 청량리역 로터리 근처에는 유독 시계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집에서 학교로 등하교를 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 그곳을 지나다녔다. 쇼윈도에는 시계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손목시계는 크게 두 종류였다.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보통 시계와 손에 차고 흔들면 저절로 시간이 가는 자동 시계가 있었다. 나의 로망은 자동 시계였다. 가격이 꽤 비쌌는데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졸랐다.

“시계를 사주세요.”

“중학생이 무슨 시계를 차니?”

“시계 사주세요. 네!”

한 달 이상 떼를 썼으나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시계를 갖고 싶다는 내 간절한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느 날부터는 문 창호지에 ‘시계 사주세요’라고 바늘로 계속 찔러댔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청량리역 로터리에 있는 시계 상점으로 갔다. 태엽을 감아서 작동하는 보통 시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흔들면 움직이는 자동 시계를 사달라고 졸랐다. 의외로 어머니는 선선히 그 비싼 자동 시계를 사 주셨다. 오리엔트 자동 시계! 대단한 물건이었다. 당시 태엽으로 가는 보통 시계를 차고 다니는 애들도 거의 없었는데, 자동 시계를 차다니! 뛸 듯이 기뻤다. 세상을 다 가진 심정이었다. 그 시계는 보물 1호가 되었다.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내 손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한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은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후배들과 MT를 갔다가 여관비 대신 볼모로 맡겨져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 허전함이나 애틋함이란? 내 마음을 알았는지 후배들은 단단히 약속했다. ‘서울에 올라가서 돈을 마련해 줄 테니 시계를 찾으세요’라고.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는 후배 중 어떤 녀석도 시계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이후 나 역시 아쉽게도 일부러 다시 치악산에 가서 그 시계를 찾아오지 못했다. 


   어머니가 그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냥‘그랬구나’라고 하셨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3주 후면 아버지 제사네요. 두 분 모두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제가 졸라 어머니께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사줬던 손목시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계시지요. 지금은 집사람이 지난해 결혼기념일에 새로 사준 시계를 차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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