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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Jul 30. 2021

4화. 역병의 창궐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역병이 창궐하여 남도지방으로 퍼진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모래톱 아이들은 이제 마을을 벗어나 물놀이는 물론이고 산이나 강을 따라 쏘다니는 일도 맘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래톱 마을에서 수일 전부터 감지된 이상한 기류는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역병 때문이었다. 역병은 대체로 급성이며 사람들의 몸 전체에 증상을 나타내어 집단적으로 생기는 전염병이었다. 그런 역병이 온 천지에 퍼지고 있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름방학은 다가오는데 마을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딱한 신세가 된 아이들은 다들 울상이 되었고, 어른들의 생활 속 불편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역병이 퍼져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괴소문 때문이었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솟아 있는 첩첩산중의 산들과 숲을 바라보니 계곡 너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낮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산불이 났다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때 단이와 친구들 일행이 강나루에서 만났다. 단이는 너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더니 역병을 쫓아내려고 불을 일부러 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일에 대해 마을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염병이 번져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죽어 나가면 마을에서는 잡귀를 쫓아내려고 일부러 짚단으로 불을 지피기도 했었.

 

청정 모래톱 마을 근처에도 역병이 가까이 온 것 같은 불안감이 사람들의 표정 속에 역력했다. 산 너머 어느 마을에는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소달구지에 실려 나간다는 뜬소문 있었고, 마을을 떠나서 산속으로 피신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한여름이 되면서 전염병과 관련된 괴소문들은 리에 꼬리를 물고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온 동네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런 소식을 모르고 뱃일에 나갔다가 뭍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뜬금없는 소문들과 동네마다 마을 어귀에서 통금을 하는 새끼줄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옆 동네에서 마을을 지나가려던 사람들이 제지당하여 되돌아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언제나 필요할 때는 편하게 왕래가 있었던 마을들이 서로 연을 끊고 지내는 모습은 생전에 본 적이 없었낯선 일이었다. 마을과 마을은 발이 끊기고 몇몇 장사꾼들만 가물에 콩 나듯 뜨문뜨문 눈에 띄었다. 마을 사람들은 옆 동네 소식을 여자들의 화장품이나 바느질 도구를 팔았던 방물장수나 봇짐과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상인인 보부상으로부터 간간이 들려오는 연통에만 의존하였다.


한편, 방학을 며칠 남겨두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책거리와 종업식을 준비하였다. 책거리는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땔 때마다 학동들이 훈장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사로 예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책거리 행사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었지만 주로 마을 어른들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여 서로 나누어 먹으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훈장님께 감사를 드리기도 했었다. 공부하는 동무들과도 함께 기쁨을 나누는 순수한 우리 조상들의 스승에 대한 감사와 공부하는 학동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작은 학교 행사였다. 모래톱 마을 분교에서도 이런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아이들이 책을 다 배우게 되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 후 책거리를 하기로 했다.


학교 선생님은 마을의 이상한 소문이 흉흉한데 책거리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이들과 의논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웃 마을에 역병이 번지고 있다는데 우리가 교실에서 행사를 해도 될까?"

"선생님,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키면서 책거리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학교 안 교실에서 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마을 밖으로 출입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하고 역병에 대한 조심을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하던 대로 공기놀이도 하고 매미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는 것을 보니 인근 지역의 역병을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나그네가 마을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할 때 한 말인데, 서울이나 수도권 쪽은 역병이 크게 번져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모래톱 마을은 큰 산을 수십 개나 넘고 넘어야 서울이니 역병에서 안전지대인 것 같기도 했다. 그 나그네도 마을에 출입하여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통금을 맡은 청년들에게 제지당하여 되돌아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5일 장에 경운기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기와집 사람이 최근의 읍내 소식을 마을에 전했다. 면사무소에서 읍내에 온 사람들에게 알리는 안내문을 벽보로 붙였다고 했다. 그 내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염병이 크게 번져 남도로 내려오고 있으니 다른 마을 출입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벽보였다고 하였다.


모래톱 마을이 있는 곳은 육지의 끝자락이라 염병에서 안전한 것 같았다. 더욱이 마을 어른들이 미리 장승제를 지내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통금을 실시하기도 하여 산 너머 인근 지역과 달리 염병에 걸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 아직은 없었다. 그런데 높은 산 너머 위쪽 지방은 역병의 창궐로 모든 일을 멈추고 학교는 방학이 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미리 학교 문을 굳게 닫았다고 하였다. 온 세상이 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어른들은 일자리를 잃기도 하였으며, 읍내 장터에 있는 점방들도 문을 닫게 되었다고 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없으니 장사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역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의 감시도 점점 심하게 되었다. 어떤 상인들은 몰래 장사를 하다가 벌금을 크게 물기도 하고 영업이 정지당하기도 했다는 소문도 퍼졌다. 한편, 출입이 금지된 곳이나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도 적발이 되면 벽보에 이름이 붙여지고 벌금도 물었다고 하였다. 세상은 염병 이전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으며 사람들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딴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썩이고 있었다. 나이 든 어른들도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지만 이런 세상은 처음 겪는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무더운 여름은 점점 다가오는데 폭염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병마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삶의 정교한 톱니바퀴가 한순간에 멈추는 듯한 살벌하고 답답한 나날 이어지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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