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서 마시자
휴가를 앞두고 회식이 잡혔다. 우리 보스는 팀 빌딩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매니저들이 다 모여서 한잔할 수 있는 자리를 두어 달에 한 번은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난번에는 진짜 맥주만 한잔씩 했는데, 이번에는 휴가 전에 먹고(!) 마시기로 함. 바비큐를 할 것이냐 미리 음식을 준비해와서 먹을 것이냐 토론이 오갔다. 작년에도 같은 곳에서 바비큐를 했다는데 한때 셰프였던(지금도 취미로 요리를 하는) 다른 매니저가 고기 굽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모두가 즐길 수 있게 간단한 요리를 먹기로 결정! 파에야를 먹을 것인지 칠리 꼰 까르네를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한참 걸렸다. 참석자들이 전부 먹는 데는 진심이라 며칠간의 투표 끝에 칠리 꼰 까르네를 먹기로 하고 각자 마실 것을 들고 퇴근 후 강변에서 모이기로 했다.
분명 6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시간 맞춰서 왔는데 왜 아무도 없지? 한 5분이 지나니 음식을 준비한 동료가 도착하고 한 20분이 지나니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동료들. "나 시간 맞춰 왔는데 아무도 없었어" 했더니 다들 "6시에 시작이 아니라 6시 '부터' 시작이라 그 이후에 아무 때나 오는 거야. 한국에서는 6시에 모이라고 하면 다 와있어?" 하길래 코리안 타임이 있긴 하지만 프렌치 타임에 견줄 바가 못된다고 이야기해줬다. 한국에 있을 때는 6시에 회식한다고 하면 다 식당에 가서 앉아있었는데. 이제 프렌치 타임 참고해서 다음부턴 천천히 가야지.
지난주엔 38도까지 올라가서 해가 진 이후에도 30도라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이번 주는 기온이 좀 떨어진지라 저녁에 선선해서 야외 회식이 힘들지 않았다. 동료들이 들고 온 맥주를 맛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 또는 먹기 싫어서 치우려고 들고 온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의자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서서 먹고 마시다 보니 여러 동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아페리티프로 로제 와인이랑 맥주를 마시면서 과카몰리, 칠리/살사 소스를 나쵸에 찍어 먹으면서 수다만 한두 시간 한 것 같다. 동료들이 쏘시송(말린 소시지 같은 것)이랑 다른 핑거푸드를 들고 와서 먹어보라고 나눠주는데 식사를 하기도 전에 이미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먹는 거 조심하라고 프랑스에서 정신 놓고 먹다 보면 엄청 살찔 거라길래 흘겨봄. 아니 그럼 자꾸 먹을 거 주지 말라고..!
6시에 모여서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드디어 밥 먹을 시간! 시계를 보니 8시쯤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미 너무 배불러서 다 못 먹음 그래도 너무 맛있어서 최대한 밀어 넣었다. 우걱우걱 먹는 내 옆에서 주말에 자전거 좀 타라고 잔소리하던 동료들.
강낭콩과 고기를 많이 넣어 만든 칠리꼰까르네! 홈메이드 핫소스도 있어서 곁들였는데 진짜 매웠다. 프랑스에 온 뒤로 처음 먹어보는 매운맛이라 난 너무 좋았고, 옆에서 같이 먹던 프랑스 동료들은 핫소스 곁들였다가 눈물 콧물 다 빼길래 한국에서는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음식 먹어서 울분을 날린다고 이야기해줌. 아니 고통을 고통으로 잊는다고?하길래 원래 이열치열 아니냐며.. 그런데 이열치열조차도 무슨 소리냐던 동료들.
이런저런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먹으면서 다음에 먹을 거 이야기하는 건 세계적인 건가 봄) 긴 3주간의 휴가 기간 동안 뭐할 건지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다들 별 계획이 없어서 놀랐다. 아니 3주 동안 뭐할 거야 너네? 나도 딱히 별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코로나 전에는 해가 바뀌면 여름휴가 티켓팅 하기 바빴는데 코로나로 3년간 집콕하다 보니 나도 집콕이 디폴트가 된 건가... 생각해보면 여기서는 차 타고 3시간 정도면 스위스도, 이탈리아도 갈 수 있고 비행기를 타면 유럽 어디라도 한 시간 컷이라 딱히 큰 계획이 필요하지 않기도 해서 일단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했다.
이틀만 더 일하면 바캉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