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Jun 23. 2022

노동조합에서 연락이 왔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한국에서는 매니저가 되면 노동조합에서 제외되는 시스템이었다. 회사마다 방침이 다를 테지만 보통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매니저가 되는 순간 사측이 되는 마법. 그런데 여기서는 아닌 모양인지 매니저가 노동조합의 대표를 맡아하기도 한다.


프랑스에 온지도 어언 두 달이 지나 세 달째로 접어들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새로 주어지는 업무도 많고 개선할 것이 천지인 데다 한창 글로벌 플래너들이 바쁠 시기라 한 이주일 정도 야근을 했다. 그래 봐야 사무실에 6시나 7시까지 남아있는 정도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나를 누가 보고는 노동조합 대표에게 '한국에서 온 매니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데 가서 얘기 좀 해 봐'라고 한 모양이다.


조합 대표는 오며 가며 만나서 얘기도 하고 커피도 같이 마셨던 사람인데, '처음 와서 적응하느라 바쁜  알고 있지만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피곤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조합 대표), 아님 너희 매니저에게 얘기해. 절대 무리하지 .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를 지키는 법이 있다고' ..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프랑스 노동조합의 힘인가. 어느 누구도 내가 무리해서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시골집 정원. 퇴근하고 마당에 누우면 바로 힐링


유럽에 미리 파견을 다녀온 주재원 선배들이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제버릇 개 못준다는 말처럼 여기 이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고쳐야만 좀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초반에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더니 이런 일이.. 우리 팀 디렉터는 내가 슈퍼휴먼인 줄 알고 '너 역량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해볼래? 저것도 해볼래?' 으아 좀 살려주라.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 생각이라 닥치는 대로 하고는 있지만, 조합에서 얘기한 것처럼 너무 힘들다 싶으면 손들어야겠다. 사람 좀 더 뽑던지 해달라고.


한국 조직을 씹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일할 때는 그 누구도 내 업무부하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예전 매니저에게 우리 팀원들 업무부하가 어떤지 아냐고 물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몰라'라는 내 기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었고 그 이후로는 30대 스태프들만 과하게 쥐어짜지는 느낌이 들었는지라 이게 이 회사 문화인가 했는데, 프랑스 와보니 그냥 그게 한국 조직 문화였나 싶다.


그렇게 쥐어짜이다 보니 집에 빨리 가려고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을지, 이래 저래 고민하다 효율적으로 일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엔지니어들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한국에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고 사람을 프랑스로 파견하는 시대가 왔다며 프랑스의 워라밸 타령에 혀를 끌끌 찬다.


한국 조직도 우리 팀을 제외하면 워라밸이 나쁘지 않았는데, 여기는 진짜 어나더 레벨인 데다가 효율이라고는 1도 없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 특히 지난주에 갔던 식당이 진짜 레전드였다. 메뉴판을 식당 구석에 뒀다가 사람들이 오면 '테이블마다 들고 가서' 오늘의 메뉴가 이건대 보고 뭐 주문할지 얘기해 줘 이렇게 물어보는 식. 내가 놀러 왔으면 귀엽다고 웃었을 텐데 여기 살게 되니 한숨이 나온다. 뭐야 이 비효율의 끝판대장은.. 이런 걸 보면 참지 못하는 걸 보니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이 무거운 걸 왜 들고다녀ㅠㅠ


   

이전 17화 퇴근하고 한잔할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