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물품을 싸들고
언니 저 이번 여름에 유럽 가요!
3년 전 남프랑스에서 결혼식을 했을 때 프랑스까지 결혼식을 보러 와 준 친구들이 있다. 이 중에서 한 커플이 여름휴가를 맞아 이탈리아-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프랑스에 방문하기로 한 것. 아 대체 얼마 만에 만나는 친구들인가! 4월에 프랑스에 왔으니 딱 4개월이 되었다.
프랑스로 출장 온 동료들이 종종 있었지만 친구들이 온 것은 처음이라 여행이 결정된 시점부터 두근두근. 어느 방을 내어줄까 고민을 하다 우리가 침실로 쓰던, 뷰가 가장 좋은 2층 큰방을 비우기로 했다.
방 정리를 앞두고 내 눈에 다래끼가 나지 않았다면 반질반질하게 청소를 해 두었을 텐데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서 며칠 누워있는 사이 남편이 정리해 둔 방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친구들이 떠나고 고양이 털 뭉치가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했으니 너무 늦은 것..
3년 전에 프랑스에 왔을 때는 파리에서 햄버거랑 한식만 주야장천 먹는 바람에 프랑스 정식을 먹어보지 못해 영 아쉬웠다는 친구들을 데리고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아쉽게도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예약할 수 없었다) 집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프랑스 시골 구석까지 와준 것도 고마운데 숙소 제공해줘서 고맙다고 풀코스로 쏘고 간 지인들. 나랑 남편은 아직 프랑스 치즈 세계에 제대로 입문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새로 시도해 보는 치즈마다 실패하는 통에 집에 마땅한 치즈가 없는데 먼길 온 친구들이 이렇게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와인과 치즈를 맛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우리도!
이틀 있어보니
좋게 말해 여유로워지고
나쁘게 말하면 나태해진다는 언니 말이
완전 이해가 가요.
빵 한번 사 먹으려면 차 타고 멀리 나가야 되고 인터넷 속도는 느려 터진 주변이 다 느리니 나도 같이 느긋해지는 시골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요약해준 그녀.
리옹 구시가지 구경을 갈까 안시 구경을 갈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집에서 바비큐를 해 먹고 커피를 내려마시고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열 일하던 공기청정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 공기 맑고 별이 잘 보이는,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이 시골마을에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와보겠니.
이렇게 친구들은 나랑 이틀 내내 수다를 떨고 먹고 또 먹는 식고문을 당하다가 스위스로 향했다. 화려한 이탈리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스위스, 그 사이 프랑스 시골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기를!
예전에 차 몰고 제네바 갔을 때는 개고생 했었는데 친구들 기차역에 배웅 나갈 때 보니 기차표 가격도 얼마 안 하고 운전하는 것보다 더 시간이 적게 걸리던.. 다음에 스위스 갈 때는 기차 타고 가도 될 것 같다.
주말에는 친구들이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고춧가루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