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언제나 그렇듯,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하루로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겨우 뜨기도 전에 남편이 다가오더니, "생일 축하해"라고 속삭이고는 출근해 버렸다.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남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뭔가 허전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이게 어른의 생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약간은 기대했던 내가 웃기기도 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입금 완료” 알림이 떠 있었다. 남편이 선물이라며 계좌에 돈을 보냈던 것이다. '돈으로 때우는구나' 싶었다. 물론 고맙긴 했지만,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너무도 뻔했다. 기저귀, 아이 용품, 아이 장난감. 내 생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돈이 결국은 아이를 위해 쓰이겠지.
점심 즈음에 친정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마음 한구석에서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생일이니 뭔가 조금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꺼내든 것은 "사위 아침밥"이라며 정성스럽게 포장된 약식 두 박스, 그리고 손녀딸이 좋아하는 포도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인데 나를 위한 건 없어요?” 엄마는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너는 이미 잘 살고 있잖아. 그게 엄마에겐 선물이야.”
그 순간, 뭔가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내 생일인데, 내가 선물이 됐다고?’ 남편을 위한 약식, 아이를 위한 포도, 그리고 엄마의 마음속 만족감. 나는 나를 위한 선물이 필요했는데, 생일을 맞은 내가 오히려 선물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결국,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올리브영에 가서 기미 크림을 하나 샀다. 내 피부라도 좀 챙겨보자는 마음이었다. 기미 크림을 손에 들고 나오면서 혼잣말을 했다. "생일 축하해, 나. 오늘도 잘 버텼어." 어릴 때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 이제는 이런 게 내 생일 선물이 된 셈이다.
내 생일에 스스로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게 좀 씁쓸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결국 어른의 생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