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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고르는 아이 옷, 어렵게 고르는 내 옷

by 김제주

아이 옷을 고를 때면 마치 너무나 쉬운 선택의 연속이다. 작은 티셔츠 하나를 고를 때조차 망설임 없이 손이 간다. "이건 귀엽네, 이 색깔이 잘 어울리겠어." 단정하고, 사랑스럽고,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옷들을 고르는 데 몇 분이면 충분하다. 아이 옷을 사는 것은 마치 즐거운 놀이 같다. 순식간에 고르고, 결제까지 끝낸다. 한참을 고민하지도, 가게를 몇 군데나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작 내 옷을 사려고 하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내 옷을 고를 때는 전혀 다르다. 매장에 들어서면 온갖 옷들이 나를 바라본다. 선반 위에 깔끔하게 정리된 셔츠와 옷걸이에 걸린 원피스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발이 묶인다. 어떤 옷을 입어야 나다운지, 어떤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릴지 고민이 끝이 없다. 이 색이 너무 튀지 않을까? 저 디자인은 너무 평범하지 않을까? 거울 앞에 서서 입어보고 다시 벗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는 날이 태반이다.


왜 그럴까? 왜 내 옷을 고르는 것은 이렇게 어려울까? 한때는 내가 입고 싶은 옷, 나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고민 없이 고르고 자신 있게 입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몸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변한 것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내 옷장 속 옷들은 점점 단순해지고, 편안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달리기 좋은 옷, 얼룩이 져도 마음 아프지 않은 옷, 매일 빨아도 상관없는 옷. 기능적인 옷들만 남아 있었다. 화려한 옷, 특별한 날을 위한 옷들은 이제 거의 입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내 옷에 대한 기준이 변한 것이다. 그리고 변한 기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아이 옷을 고르는 건 쉽다. 아이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그 성장에 맞춰 새로운 옷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옷은 특별히 복잡한 기준 없이, 그저 아이에게 잘 어울리고 편안하면 된다. 하지만 내 옷을 고르는 건 다르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 엄마로서의 실용성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나다운 옷을 입고 싶은 갈등 속에 놓여 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옷을 사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것은 옷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나의 역할과 모습을 재정립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자신 있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줄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옷을 고르는 일은 한 번 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내게 어울리는 옷은 어떤 것일까? 그 물음들은 단순히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다.


네 옷은 쉽게 사는데, 내 옷을 사는 건 이렇게 어려운 이유. 그것은 결국 내 삶이, 내 모습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진짜 옷을 고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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