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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by 김제주

지난겨울, 나는 큰 결심을 하고 김치를 직접 담갔다. "우리 집 김치는 내가 책임진다!"라는 굳은 의지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고, 그걸 다시 손수 담가서 냉장고에 넣는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던지. 그때만 해도 "이제 직접 김치 담글 일은 없을 거야"라고 다짐하게 된 나를 발견했다.

결국 나는 올해부터 김치를 사 먹기로 마음먹었다. XX산 김치, 홍XX 김치, XX호텔 김치… 입맛에 맞는 김치 리스트를 만들고, 그중에서 어떤 걸 고를지 고민하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엔 김치 냉장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용량 김치를 사다 놓으면 어디에 보관하냐고! 냉장고에 자리가 없으니, 한 번에 많이 사지도 못하고 자주자주 소량씩 주문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김치가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고민이다. "이번엔 어떤 김치를 주문하지?" 매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그러면서도 대용량 김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다. 김치 냉장고가 없는 나는 일종의 김치 주문 루프에 빠진 셈이다.


솔직히, 김치를 직접 담갔던 그 지난겨울의 경험이 떠오를 때마다 '차라리 그때 고생하고 지금 편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손이 시려질 걸 생각하면, 음… 아니다, 그냥 사 먹는 게 맞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지하게 김치 냉장고를 사야 하나 고민 중이다. '김치 냉장고 없는 한국인의 삶이 이렇게 고달플 줄이야'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아, 오늘은 XX산 김치로 할까, XX호텔 김치로 할까? 아니면… 그냥 둘 다 조금씩 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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