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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놀자

by 김제주

당근해온 자연관찰책 세트가 벌써 너덜너덜해졌다. 아이는 매일같이 책을 들고 와서 내 무릎에 툭 던진다. 그럼 나는 또 읽어야 할 운명이다. 하루에 몇 권이 아니라, 30권쯤 읽어달라는 느낌이다. 내 목소리는 이미 갈라지기 시작했는데도, 아기는 계속해서 책을 들이밀고 나를 바라본다.


사실, 나도 한계를 느껴서 XX펜이라는 책 읽어주는 마법의 도구를 구매했다. 이걸로 내 목을 살릴 수 있겠구나 했지. 그런데 웬걸, 우리 아이는 펜에서 나오는 기계음보다는 엄마가 읽어주는 걸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펜을 대면 나오는 차가운 음성보다는, 쉰 목소리라도 엄마의 음성을 더 선호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하지만 귀여움은 잠깐일 뿐, 내 목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책 대신 놀이터로 나가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차라리 몸을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기를 보면서 나는 잠시나마 목을 쉴 수 있다. 물론 이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아마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관찰책이 내 무릎 위로 떨어지겠지.


XX펜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 기계가 아닌 엄마의 목소리가 아기의 최고 선택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소중한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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