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리 Aug 13. 2021

꿈꾸는 곳에서 일한다는 환상

NGO 입사부터 퇴사까지 2년

기초생활수급자를 돕다 본인도 수급자가 된다는 직업을 아시나요? 사회복지학과 2학년 때쯤 듣고 웃지 못했던 농담입니다. 월요일 아침, 단톡방이 울립니다. 떡볶이는 언제 먹을래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오빠 꽃 피우던 대화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3명이 모인 단톡방은 비영리단체, 치과, 디자인 회사를 다니는 노동자들이 모여있습니다.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수당 없는 야근, 본인 위주로 스케줄 표를 짜서 엉망인 오프를 주는 실장, 일은 안 해도 처세는 잘하는 직장동료를 만나는 어려움을 겪는 건 같습니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태어난 죗값을 치르기 위해”라는 트위터 짤이 떠오릅니다.


 지금보다 순진하던 시절에는 분명 꿈을 꾸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때 네팔에서  만났던 한 아이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구호 물품과 따듯한 말을 꼭 전해주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졸업 후 약국 캐셔 등 각종 알바를 전전하며 준비했지만 입사는 쉽지 않았고 돈은 벌어야 했습니다. 비영리 단체는 최종 목표인 동시에 늘 이직사유였습니다. 마침내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사업장 규모도 연봉도 이전 직장보다 반 토막 난 곳으로 이직하는 딸을 말리는 아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요.


 비영리단체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대표님의 원칙이 사비로 출장 비행기 표를 끊고 여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인 줄 몰랐습니다. 무엇에 취한 것인지 돈이 그때는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랬어요.


 요즘 저는 회의실에서 뚜벅뚜벅 소리가 들리면 발끝을 봅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시선을 올려 상사 미간을 바라봅니다. 상사를 대하는 최선이라고나 할까요. 인류에게 노동은 신화 속 시지프스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기가 무섭게 이내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영원한 고통에 불과한 걸까요?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황석영 선생님의 말이 저 먼 나라 신화보다 가깝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쥐어짜 보면 보람이 한 방울 정도는 나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지원을 받고 수줍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을 만날 때 말이죠. 아, 물론 매월 통장에 찍힌 작고 귀여운 숫자는 희미한 희열과 안도를 안겨주고 말고요.


 여전히 출근은 싫고 남몰래 이직을 결심한 지 오래지만 기왕이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가냘픈 의지와 함께 텅장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할 뿐입니다.

이전 02화 졸업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