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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

전학생

by Shu

아아... 너무 낯설다.

난 눈을 비비며 다시 이 차가운 철문을 만져댔다.

고운 베이지 색의 무거운 철문이다.

위를 보니 짙은 초록색으로 숫자가 쓰여 있었다.


'6–2'


정말 끔찍한 숫자다.

안타깝게도 여긴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난 배치받은 자리에 앉아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나와 비슷한 곳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다.

꽤나 예쁘장하고 친화력도 좋은 아이였다.

난 그 애와 내가 꽤 친해질 줄 알았다.


그 아이의 집에서 음료를 쏟기 전에는 말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현관에 대놓고 쏟고는 나가버렸으니 말이다.


끈적하게 눌어붙은 음료를 닦으며 홀로 훌쩍였을지도 모르는데....


난 그 아이와는 어울리지 못했다.

그 애의 집을 나오며 사과 한마디 띡하고 던지고 나온 것 같긴 한데..


나와 어쩌면 조금 비슷한 그 아이는 다음날이 되고서는 나를 모른 체했다.

그럴만하지 하고서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그 애를 보니 또다시 혼자가 됐다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였다.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것을 알기에 그냥 혼자 지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했는데...


"뭐야, 지금 어디 가는 건데?"


엄마는 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웬 아파트로 들어가니 그냥 열리는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니 정겹고도 따듯한 냄새가 풍겨져 왔다.


여기가 어디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 오셨어요?"


"네~ 아유.. 인사해"


엄마는 내 등을 떠밀었고, 난 알지도 못하는 한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화장끼가 보이는 밝은 갈색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포니테일을 하고서는 검은 리본을 장식한 그런 여자였다.


서른 중후반, 아니면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지만 젊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속눈썹은 짙고 길어 내 시선을 끌었다.


" 자, 테스트를 해볼까?"


갑작스러운 말에 난 그녀가 내 앞에 내민 종이에 눈을 돌렸다.


어지러운 숫자가 여럿 쌓여있는 종이였다.

그 재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쭉 놓여있는 흉터 많은 나무 책상들과 화이트보드..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투명한 파일..

이곳이 학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게 해 주었다.


난 배신감을 느끼며 엄마를 쳐다봤다.

빨리 나에게 종이에 집중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난 그 모습에 순순히 연필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난 전에도 공부 따위는 하지 않는 아이였고..

시험을 칠 때면 책상 서랍에 프린트물을 숨겨놓고는 커닝을 하거나 아니면 전부 틀려먹고 보충 수업을 듣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풀어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비만 내렸고, 그래도 다행인가 그 여자는 나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면서 나를 받아줬다.


그것도 다 돈을 벌기 위한 행위였겠지만 난 처음으로 다니게 된 학원에서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부 출석했고 가서도 다른 아이들과 떠드는 일은 없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 나와 같은 반인 남자애 하나가 있었다.


키는 나보다 매우 매우 컸고, 말장난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생김새도 그렇게까지 못생기지 않고 반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난 그에게 곧잘 말을 걸려 했다.

그냥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그는 항상 이어폰을 귀에 끼고는 걸었다.

나보다 한참은 키 큰 그를 따라잡기에 내 속도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난 저절로 빠른 걸음을 택하게 되었다.


그래도 난 그와 친해질 일이 없었다.

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촌스러운 옷만 입고 다녔다.

파란 줄무늬가 있는 셔츠에 남색의 두꺼운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같은 반의 여자애들은 전부 반바지에 크롭티, 아니면 갈고리 모양의 검은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난 멍청한 모습이었다.

유행 지난 더러운 운동화는 기본이고 관리 안된 얼룩덜룩하고 부스스한 밝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피부도 좋지 않아서 어두운 색의 피부에 여드름만 덕지덕지 나 있었다.


한마디로 반에서 인기 있는 그와 난 같은 급이 아니니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난 그 사실은 알고 있었고, 또 수긍했다.

내 빨라진 걸음걸이와 시선은 날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바뀔 줄 모르는 내 눈치는 더 날 구석으로 내 몰았다.


계속되는 나의 멍청한 실수는 단체 과제를 시키는 선생들을 저주하게 만들고, 여자애들의 따끈한 시선을 차리 하기 위한 나의 발악은 나를 알아주는 것인지 뭔지 내가 혼자가 되도록 했다.


그렇기에 난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학원에서 일상의 반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도 어느 때처럼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난 워낙에 공부를 안 하고 재능도 없고 끈기도 없는 편이라 그냥 계속해서 풀고 있었다.


내 또래들은 전부 집에 가고 중학생들 언니 오빠들만 남아있었다.

난 그 틈에 껴서 눈치 보며 계속해서 문제를 풀어 나갔다.

난 남들보다 느렸고, 남들보다 더 멍청했다.


그런데...

3시간이 채 지나자 그 여자가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고...

날 꽉 안았다.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난 놀랐다.

왜 너를 이렇게 안아주는 건지.. 이 사람이 도대체 물음 꿍꿍이인지..


난 살아오며 이 어린 나이에 온갖 수난을 다 겪었고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될 때도, 득이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과거가 씻기고 잊히는 듯했다.


난 당황하여 아무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고 이 여자도 그걸 눈치채는 듯했다.

내 눈은 따듯해지고 눈시울은 붉어졌으나 끝내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나를 뒤로하며 일어서 내 책을 가져갔다.


" 노력했구나. 좋아, 내일부터 더 열심히 하는 거다?"


나는 입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싫다.

관심은 나는 워낙에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기에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내가 말을 하면 쳐다봤다.


강아지가 말을 한 것이라도 보는듯한 눈빛으로

난 그게 너무 싫어서 아예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냥 말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사회성이 부족한 나에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외로운 겨울 방학이 지나고...

난 중학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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