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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 어설프고 용감하다

삶에 놓인 무수한 처음의 순간들에 대한 성찰

by mz교사 나른이

‘처음’이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경험이나 도전을 하든 간에. 삶의 유한성과 한계성이 굳건히 잔존하는 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삶을 살아간 세월이 길든 짧든 초면인 것들과 자꾸 대면하게 된다.


삶이란 얼핏 보기에 정형화된 일상의 반복이자 도돌이표 투성이 악보 같다. 학교이든 직장이든 매일 같은 장소에 당도하며, 비스무리한 시간에 음식물을 섭취하며, 엊그제와 비슷한 과업들을 해낸다. 그럼에도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시작점부터 도착점까지 완벽히 겹치는 하루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 속에는 작은 변수라도 필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며-그 변주가 귀한 손님이든 불청객이든 간에- 때론 조그마한 변수가 굳건히 정형화되어 고체화된 삶의 양상에 작은 틈을 낸다. 그 틈새에는 ‘처음’, ‘초면’, ‘시작’과 같이 긴장되고 설레는 씨앗이 심기 운다. 처음, 초면, 시작과 같은 낯선 씨앗이 우리의 삶에 뿌리내릴 때, 우리는 실수하고 흔들리지만 그러한 변혁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삶이라는 흙이 일궈지고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더욱 비옥해진다.


펼쳐 놓았을 때 왼편은 얇고 오른편은 두꺼운, 아직은 손에 익지 않은 빳빳한 일기장에 신년 계획을 꾹꾹 눌러 담다가 문득 펜을 내려놓았다. 새로움에 대한 다짐으로 뚱뚱해진 글씨를 주시하다가 내 삶의 수많은 처음의 순간을 회상해 보았다. 어설프고 미숙해서 직접 이리저리 부딪치고 결국엔 대판 깨지고 나서야 상처를 감싸 쥔 채 삶의 교훈을 얻었던 나. 새로운 도약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뛰쳐나가다가도 작은 생채기에 금세 사금파리가 되어 하얗게 질려버렸던 나. 어떠한 시작은 달콤했고, 또 쌉쌀했고, 때로는 아팠다.

미숙했던 첫 연애를 떠올려 보았다. 이 끄트머리로 살포시 누르면 찌릿찌릿 아프지만 그래도 괜히 한 번 건들어 보게 되는 혓바늘 같은 해진 추억. 첫 연애 상대였던 그와 처음인 것들을 참 많이도 했다. 처음으로 가본 칵테일바, 여의도 벚꽃 축제, 한강 산책, 이태원 구경... 새로운 경험에 도파민 중추가 자극되어서인지 항상 감정은 격양 상태였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고 응원하게 되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기에 그 감정은 야말로 경이로웠다. 첫 연애는 풋풋했고 싱그러웠고, 그리고 지나치게 미숙했다. 사랑을 주고받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철부지였기에 참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사랑한다면 나의 모든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의 못난 모습까지 다 드러내고야 말았다. 지나치게 투명해 유리 같았던 관계는, 연약하고 융통성 없었다. 미세한 구부러짐조차 용납하지 못해 결국 수백 수천 가지의 추억 조각만 남긴 채 깨져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추억은 힘이 없었다. 참 많이 울었고 원망과 증오로 바들거리며 긴 밤을 보내곤 했다. 참 아팠던 그 성장통으로, 결국 성숙한 연애와 사랑에 대해 재정의할 기회를 얻었으며 사랑에 배려와 존중을 덧붙이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의 추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아직도 천둥벌거숭이 같은 못 말리는 사회 초년생이지만- 첫 출근을 앞두고 설렘과 긴장으로 잠을 설쳤음에도 피로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때를 기억한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사회로부터 검증받은 것만 같아 벅차올랐던 첫 며칠의 나날. 처음으로 내 힘으로 번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을 때의 그 뿌듯함. 그래도 내가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쓸모 있는 인간으로 자라났구나, 하는 증명서 같아 통장 어플을 자꾸만 열어서 통장에 찍힌 적은 금액의 돈을 거듭 확인했다. 사회생활로 나는 뿌듯했고, 행복했고, 그러나 어리석었고, 세상의 비열함에 실망했기에 조금 더 성장해 어른이 되었다.

첫 사회생활로서 더 이상 나는 어른들로부터 늘 인정받는 공부 잘하는 성실한 모범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생 시절 내내 숙제를 성실하게 해 오고 학업도 줄곧 상위권이었던 나는 늘 어른들로부터 칭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회 초년생, 서툰 근로자인 나는 모르는 것들과 손에 익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고, 배운 것을 잊어버렸어도 다시 질문하기 곤란해하며 눈치 보기도 하는-학생 때는 질문 하면 칭찬받았는데!-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실수하고 눈치 보고 아주 조금씩 배워나갔던 그 시간들. 어린 시절 내내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는 말을 진리로 알고 자라와 어른들은 늘 옳고 이성적인 줄로만 알았던 내 철칙은 사회생활을 하며 조각조각 깨져 짓밟혔다. 사회인 대 사회인으로서 나와 인연을 맺은 어른들은, 어른과 아이로서 인연을 맺었던 어른들의 면모와 완벽히 달랐다. 진중하고 이성적인 줄만 알았던 어른들이 사실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찌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은 충격이란. 세상의 민낯을 들추어내고 처음엔 충격에 어쩔 줄 몰랐다. 결국 그 민낯에 익숙해져야 함을,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닫고 차츰 지저분한 세상에 익숙해졌다.

교사로서 첫 수업을 한 날을 기억한다. 교생실습 때 수없이 수업을 해보았지만 이렇게 수업을 오롯이 홀로 이끌어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교생실습 당시 교실 뒤편에 서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던 실습 담당 선생님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실전은 실전이군, 앙다문 입술 뒤에서 비장하게 읊조렸다. 3월 첫날 그리고 첫 교시 첫 수업.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교실에서 잔뜩 얼어있던 아이들의 수십 쌍의 눈동자들은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나에게 ‘뭐라도 해서 이 어색한 공기를 거둬 달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져 눈동자를 마주치기도 긴장되었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진행했던 첫 수업. 아이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적지근해-지금 생각해 보면, 첫 수업에 아이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건 너무나 당연했다. 아이들도 낯선 교실, 낯선 친구, 낯선 교사라는 스트레스적 상황에 놓여 있어 무진장 얼어 있었는걸- 뭐라도 실수했나 되짚어 보곤 했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좁은 교실에서 유일한 성인이자 아이들의 보호자라니. 상반되는 두 위치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초보 광대가 되어 중심을 잡으려 허둥대곤 했다.


작가로서의 첫 도전은 여전히도 진행 중이다. 아직 누군가 인정해 주는 정식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 지망생이지만, 어찌 되었든 도전은 시작되었으니. 어린 시절부터 작가라는 꿈은 늘 마음 한구석에 소심하게 자리했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고, 무언가 끼적이는 행위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에게는 작가가 제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면 부끄러움에 몸을 꼬아대면서도 나의 글이 읽히고 관심받는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며 양면의 감정이 몰려왔다. 글 쓰는 것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팔릴 만한 글을 쓰는 문담, 문장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과연 정식 작가가 될 소질을 내가 지니고 있는가. -직업 선택에는 흥미, 적성보다 소질, 능력이 우선시된다는 직설적이고 딱딱한 현실을 깨우친 지 오래이기에. 내 능력과 소질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객관화하려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가장 게으른 자세로 침대에서 읽어 내리다가 찬사에 감탄을 덧붙이는 순간이 잦다.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미묘하며 예술적인 단어를 골라 문장에 녹여내었는가 탄성을 뱉어낸다. 작가가 마주한 한 장면을 손으로 쓰윽 훑어내는 것 같은 세밀한 묘사적 문장을 지팡이 삼아 좁은 방의 하얀 벽에 상상의 그림을 그려본다.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이런 천재적인 사람들에게만이 작가라는 칭호가 허용되는 것은 아닐까.


수 없는 처음을 맞닥뜨려왔고, 앞으로도 좋든 싫든 수많은 처음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어떤 시작은 내 의지 따위 상관없다는 듯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기어코 부딪치고 말 것이고, 또 어떤 시작은 설레는 마음으로 혹은 굳은 의지로 내가 먼저 다가가 움켜쥐고 말 것이다. 처음이라는 칭호 속에서 몇 번이나 깨지고 다치고 상처받을 것인가? 또 얼마나 설레고 자라나고 세상을 알아 갈 것인가. 수많은 처음의 순간에 놓인 마음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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