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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호랑이 Apr 03. 2019

[생후 1일] 나와 같은 공기를 나누며

창 밖에 벚꽃이 만개했다






/일요일 오전 9시 30분/

교회에서 예배 중에 아내가 왈칵한 느낌이 들었다며 화장실로 갔다.

아직 예정일까지 일주일 남긴 했지만 직감적으로 주변정리를 하고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양수 터진 것 같아. 빨리 1층으로 내려와"












/일요일 오전 10시/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겉으로는 굉장히 침착한 척하고 있었지만, 속에는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그에 비해 간호사님들과 당직 의사 선생님은 평온해 보였다.

그분들의 평온한 모습 덕분인지 긴장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역시 베테랑은 다른 것 같다.


진찰이 끝난 후 바로 입원을 했고,

오늘내일 중으로 아기를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병실에 들어갔다.

안에는 산모가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짐볼 그리고 보호자가 앉아있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다.

여기에 있다가 아기가 나올 때 수술실에 들어가나 보다 생각했다.

그때, 옆 병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진통이 너무 심해서 그런 걸까? 그 산모가 걱정도 되고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겁에 질릴까 봐 소리 좀 그만 질렀음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나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응애응애"  

아기 소리다. 아기가 태어났다. 밖에서 대기하던 산모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달려왔고, 간호사님이 몇 시 몇 분 건강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아이가 나오는 순간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놀랍기도 하고 아직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가 병실이었다가 수술실이 되기도 하는 거구나. 갑자기 이 공간이 조금 무서워졌다. 하지만 아내에게 힘을 줘야 하기에 무서운 척할 수 없었다. 태연한 듯 말했다. "여기서 아기를 낳나 봐! 신기하다!"

하지만 평소에도 나보다 용감했던 아내는 "몰랐어?"라고 대답했다.












/일요일 오후 6시/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내진검사를 하러 오셨다.

이제 4cm 열렸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다.

아직 아기가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단다. 밑으로 더 내려와야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진통이 오는 와중에도 걷기와 짐볼을 하며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월요일 오전 3시/

아직도 아기는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진통은 점점 심해져갔다.

간호사님이 무통주사를 달아주시고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산고의 고통은 왜 엄마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걸까?

아빠와 엄마가 반반씩 나눌 수 있다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월요일 오전 7시/

무통주사를 맞고 조금 잤지만 진통이 점점 더 세지는지 아내가 조금씩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고통을 참았고 소리를 지를 것 같아 자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얼마 후 처음부터 우리를 담당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 얼굴을 보니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첫마디에 참아왔던 눈물샘이 터졌다.

"많이 힘들었죠? 잘 참았어요."


어젯밤부터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한번 더 내진하셨고 자궁문이 열렸으나 아기가 아직 내려오지 않아서 자연 분만하기 힘들 수 있다고 이야기 주셨다. 조심스럽게 수술을 권유하셨지만, 수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촉진제를 맞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선생님도 2시까지는 기다려볼 수 있지만 양수가 터진 상태이기에 그 이후에는 수술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월요일 오후 1시/

아내가 도저히 못 참을 것 같다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쳐다보는 것으로 전해지는 고통이라면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너무 아팠고 얼른 간호사님에게 수술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수술하기 전 보호자가 알아야 할 사항을 이야기해주시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빨리 수술부터 해주셨으면 했는데 이걸 다 듣고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어떤 이야기 들인 지 생각이 안 난다. 아마 의사 선생님도 한쪽 귀로 빠져나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알고 계셨을 것 같다. 


보호자 동의를 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씀 주셨고 그 시간 동안 입원실로 올라가기 위해 짐 정리를 했다.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오전에 수술 이야기를 하셨을 때 바로 수술한다고 할걸. 아니면 조금이라도 일찍 수술한다고 할걸. 후회가 됐다.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먼저 수술해달라고 말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오지 않은 아기가 미웠다. 



/월요일 오후 2시 14분/

돌도미(태명)가 세상에 나왔다. 수술실에서 나오는 아기를 보며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님이 아기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 하나하나 다 정상이라고 말해주실 때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미운 마음도 들었다.

뱃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사랑스럽더니 엄마를 괴롭히던 모습에서 있던 정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아기와 첫 만남을 끝내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화요일 오전 11시/

아내는 오랜 진통 끝에 수술을 한 탓인지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진통을 겪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하루에 세 번 아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움직이는 게 아직 불편한 아내는 병실에 있기로 하고 나 혼자 아기를 보러 갔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신생아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 때 설레임. 창 밖은 이미 벚꽃이 만개했다.

어제의 시간이 지나고 다가온 오늘의 만남은 마치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어제의 미웠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미 이곳에는 딸바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이 되자 커튼이 걷혔고,

그곳에는 작은 아기천사가 플라스틱 침대에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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