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이다
/생후 2일/
출산휴가 3일과 연차 2일을 써서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있기로 했다.
아내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한다. 얼른 괜찮아져야 아기를 보러 함께 갈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찍어온 사진으로만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애를 내가 낳은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며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의 중요한 일과는 하루에 세 번 아기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하루에 15분씩 유리벽 너머로 아기를 볼 수 있는데 그 시간에 안 가면 우리 아기만 혼자 있을 것 같아서 신생아실에 있는 동안 시간에 맞춰 매일 아기를 보러 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기를 보러 갔는데 커튼이 열리고 얼마 후 돌도미(태명)가 토를 조금 했다. 아기가 토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혹시 뭐가 잘못된 게 아닌 가 싶어서 유리벽 너머에 있는 간호사님에게 손짓 발짓을 하며 온몸으로 아기를 봐달라고 표현을 했다.(마치 '몸으로 말해요' 같았다.) 간호사님은 능숙하게 아기를 안아서 토를 닦아주시고 트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표정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래도 벌렁이는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15분이 지난 후 바로 간호사실에 전화해서 아기가 괜찮은지 물었다. 간호사님은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켰고 앞으로도 잘 보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유별나게 굴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첫째 때는 누구나 그런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걱정과 긴장이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상태로 병실에 가서 아내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다 말하고 나서야 아내가 걱정할 수도 있는데 괜히 말했다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기들은 원래 그래"
걱정 많은 아빠라서 미안해.
듬직한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
/생후 3일/
아내가 오늘은 돌도미(태명)를 보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아기를 한 번도 못 봤으니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그래 돌도미한테 가보자."
면회시간 30분 전부터 천천히 조금씩 신생아실로 향했다. 아내의 팔에는 여전히 주렁주렁 여러 가지 들이 달려 있었다. 달려 있는 것들을 떼고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생아실 앞에 도착해서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하니 곧 커튼이 걷혔다.
아내가 처음으로 아기를 봤다.
뱃속에 있을 때는 주수보다 2주나 크다고 이야기해서 엄청 큰 아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직접 보니 생각보다 작아서 놀랬다고 한다.
아내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낳은 게 맞냐고 묻고 또 물었다.
오랜 진통 끝에 수술을 해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수고했어.
보고 또 봤다.
학창 시절 유난히 시크했던 아내가 아기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 미소에 아기도 덩달아 웃었다. (이 시기의 아기는 무의식적으로 웃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었고,
두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늘었다.
우리는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