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하는 여자
쌀 씻는 소리가 클래식컬하다. 물에 담갔다 쥐락펴락 빠지는 손에 뜨물이 아이크림처럼 하얗다. 콧 리듬을 타는 빰에 옅은 홍조가 막 시작되고 있는 노을 같다. 창밖을 바라보며 일상의 저녁이 돼가고 있는 소리에 집중을 한다. 칼과 도마가 내는 마찰 소리. 가스레인지 켜지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 손이 바쁜 여자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맛은 소리들이 어울리는 합창이 만들어 낸다. 밥맛을 탐식하게 해 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식당의 구석진 자리에서 정이 담기지 않은 밥상으로 한 끼의 허기를 쏜살같이 때우던 시간이 길었다. 혼밥과 혼술이 편하다고 거짓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은 밥 한 끼 해치우는 것이 외롭고 성가셨다.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넘치도록 받고 있는 정성이 뱃살을 자꾸 늘린다. 맛은 평가가 의미 없다. 맛깔난다. 먹고 싶다는 말만 하면 4인용 식탁이 금방 넘쳐나게 차려낸다. 겉절이를 무쳐내고 나물을 버무려 낸다. 갈치와 조기를 굽고 된장국은 기본이다. 좋아하는 산낙지가 탕탕이가 되고 초무침이 된다. 저녁마다 요리가 달라진다. 한번 먹은 반찬은 연이어 밥상에 올라오지 않는다. 가볍게 목을 축일 비아막걸리 한 병 올려놓으면 만찬이 완성된다. 생선살을 발라주고 쌈을 싸주는 여자와 마주 앉은 저녁이 푸짐하다.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담담하게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다. 맛있게 사랑을 먹고 싶다는 꿈이 현실이 되었다. 밥이 일상을 평화롭게 해 준다. 밥 잘하는 여자가 우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