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걱정 사이
연쇄적이다. 유기적인 연결이 자연스럽다. 걱정이 다른 걱정을 불러와 걱정의 늪에 빠뜨리는 방식이다. 속도가 무척 빠르다. 연결의 카테고리가 치밀하다. 앞뒤가 제법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유지된다. 이렇게 된다면 혹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가정이 끌고 올 결과치를 산정하게 되고 그 값에 따라 다시 다른 가정이 꼬리를 문다. 걱정은 걱정을 먹고 덩치를 무한대로 키우는 괴물이다.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금 막힌 일이 없이 잘 풀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윤기 나는 생활을 하며 얼굴에 함박꽃이 피어있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걱정은 있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 더 행복한 생활수준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가 걱정이다. 지금의 행운을 잃게 될까 봐서 밤잠을 설친다. 하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별아 별 삶의 시간이 모두 걱정일 것이다. 한 끼의 고충과 한숨의 잠자리와 올지모를 내일의 명운을 단 행운마저도 걱정이다. 걱정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숙명일지 모르겠다.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지구인을 볼 수 없다.
오늘 내가 질머지고 있는 걱정이 제일 크고 시급한 걱정거리다. 남들이 하고 있는 걱정은 알고 있더라도 마음에 깊이 와닿지 않는다. 내 걱정 최우선주의, 걱정이 가진 속성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 중 지존이다. 자기를 넘어선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없는 세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자기를 걱정하게 만드는 걱정 이외의 타인의 걱정에 민감하게 먼저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제도 그랬다. 오늘도 그럴 것 같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나를 위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긴장시키고 있다. 걱정이 걱정을 걱정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팔자다.
곧 다가올 건강검진에서 뭔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까 걱정이다. 건강하고 바른생활만 하지 못했기에 더 걱정이다. 안 좋은 뭔가가 발생하면 어찌할까, 치료비 걱정, 직장걱정, 집걱정 게다가 가족들 걱정.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어떻게 수긍시키고 위로해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까지. 하나의 걱정이 생기면 끝장 걱정까지 순식간에 치고 들어간다.
어디 건강뿐이겠는가. 하늘을 뚫을 때까지 폭등할 기세인 물가 때문에 늘어가는 카드값이 걱정이다. 명목상 오른 급여에도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아 내야 할 세금은 많아지고 필수로 유지해야 할 보험료도 올라서 걱정이다. 자식걱정, 부모걱정, 친구며 지인걱정. 걱정은 하면 할수록 좀 더 센 걱정이 자리를 차지한다. 걱정의 지진이 일으킨 여파가 걱정의 쓰나미를 발생시킨다. 사는 날이 계속될 동안에 걱정을 멈출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해소되지 않을 걱정은 없다고 믿는다. 해결방법을 미리 찾아내라고 그리하여 닥쳐올 위험을 헤쳐나가라고 경고를 해주는 심리적 사전기능이 걱정인 것이다. 따라서 걱정이 많다고 주눅 들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걱정을 걱정하는 것이다. 삶을 안전하게 그리고 순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게 하기 위해 조심을 강조하는 보완제가 걱정이란 확신을 걱정스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