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기차로 대륙을 누비다.
밀라노에서 프랑스의 리스로 가는 길은 정말 어려운 길이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러나 전 여행 기간 중 이렇게 다양한 교통수단을 경험하고 또 아름다운 길을 여행한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날의 이상한 조짐은 숙소에서부터 일어났다. 3일간 부지런히 이태리의 베네치아, 나포리,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을 관광하느냐 몸이 파김치가 되어 조금 늦게 일어나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밥 먹으라 한다. 밀라노에서 리스까지는 기차로 5시간 20여분이 걸리기에 바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도 다른 일이 있으니 밥을 빨리 먹어야 한다고 한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건강한 한국 남자가 식사를 하고 있다. 어제 늦은 밤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다 했는데 언제 들어왔을까 생각하며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아주 무표정에 무뚝뚝한 말투로 "예" 한마디만 하고 만다. 표정이나 모습을 봐서 더 이상 말 붙이기도 힘들다.
내가 먼저 들어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가는데 아내가 그제야 씻고 들어온다. 조금 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밥을 먹고 들어오는 집사람이 다가와 소곤거린다. 식당에 들어가 아까 그 사람 있잖아? 자기가 인사를 했는데 대꾸도 안 하고 먹던 음식 그냥 버리고 식당을 나갔는데 들어오다 여기 집주인아저씨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주 심한 북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숙소 아닌가 싶다며 불안하다 한다. 하기야 여기 주인아저씨는 내가 이야기해도 무조건 아주머니하고 이야기하라 하며 말을 아꼈었다.
기차 탈시간이 남아 역 주위를 돌아다니다 시간이 되어 기차를 타러 갔더니 무언가 이상하다. 2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기차가 두 시간 전에 출발했어야 할 열차도 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사고가 났다고도 하고 프랑스 철도 파업이라도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역무원이 무어라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중에 안 바로는 여기서 제노바 가는 길에 지난밤 폭우로 철도가 끊겨 기차 운행이 중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 열차가 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프랫홈을 빠져나간다. 나도 머리가 복잡하다. 말도 잘 안 통하고 지리도 모르고.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여기서 니스로 가는 길은 바로 남쪽으로 제노바로 가는 길이 제일 빠르지만 그 길이 끊겼다니 다른 길은 밀라노 북쪽으로 가서 먼 거리의 프랑스를 지나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태리의 남쪽으로 갔다가 제노바를 거쳐 리스로 가는 길이다. 프랑스는 지금 철도 파업 중이고 유레일패스를 이용하기에는 프랑스가 힘들다. 이태리의 남쪽으로 갔다가 제노바 가는 길을 택해 파르마로 일단 가본다.
기차는 철도가 끊기고 프랑스의 파업으로 운행이 취소되기도 하여 정말 많이 복잡하다. 파르마에서 다시 제노바 가는 기차를 탔다.
장거리 노선은 취소가 되었고 지역을 오가는 기차는 그래도 다닌다. 얼마를 갔을까? 조그만 도시에 도착했는데 전부 내리라 한다. 철도가 끊겼기에 버스를 타고 가야 된다고 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도시에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한시적 셔틀버스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제노바의 기차역에 데려다준다. 기차만 타고 다니던 여행에 고속도로를 다니는 새로운 여행을 한 것이다.
버스 여행은 기차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의 여행을 제공해 준다. 구비 구비 산길을 오르내리며 차창에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면서 경치가 정말 좋다. 계곡에는 많은 비로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고 그 위로는 구름이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경치는 잠시 시름을 잊게 한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제노바는 아름다운 도시다. 리스에 숙소를 예약해 놓지 않았다면 제노바에서 하루 묵었다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제 제노바에서 리스까지 가는 길은 기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된다. 제노바에서 기차를 타서 중간에 갈아타면 리스까지 가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차를 타는 데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광판을 보고 열차를 타러 플렛홈에서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문제는 열차 운행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방송을 하여 연착된 것과 다른 열차가 도착하는 것을 알려주는데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여 좀 일찍 갈 수 있었는데 늦게 출발하여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제노바에서 벤티미글리아라는 이태리와 프랑스의 국경도시로 가는 기찻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바닷가를 계속해서 달리고 그 바닷가 휴양지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경치도 벤티미글리아라는 도시에서 리스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있느냐의 걱정에 흥미롭게 다가오지 못했다.
아름다운 경치도 잠시 뿐 깜깜한 밤이 이어지고 가끔 예쁜 기차역이 지나고 그렇게 벤티미글리아 역에 도착하였다. 시간상으로도 마지막 기차는 없을 시간이지만 기차역은 완전 여행객으로 넘쳐 났다. 아마 오늘 기차가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발이 묶인 여행객들이 기차역에서 날을 샐 모양이다.
기차역의 무질서한 분위기에 쫓겨 나오다시피 밖으로 나온다.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여기서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숙소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데 택시가 어느 사람들과 흥정하고 있다. 다가가 물어보니 기차가 잘 안 다녀 리스에서 손님을 태우고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리스로 돌아가려는데 리스 갈 사람을 찾는 거란다. 합승택시다. 얼마냐 물어보니 자기는 120유로를 받아야 된다고 하며 지금 두 사람이 60유로를 내고 타 기다리고 있으니 가고 싶으면 60유로를 내고 가자고 한다.
여기서 숙소 구하기도 어렵고 리스에 예약된 숙소가 있어 오늘 들어가지 못하면 돌려받지도 못하니 그게 좋겠다 싶어 택시를 탄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리스로 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였다. 높은 산을 지나고 고속도로를 지나 다시 높은 곳에서 바라본 리스 시내의 야경은 그것으로 60유로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황홀한 순간이었다.
장시간의 기차, 그리고 버스, 마무리는 택시 이렇게 이태리와 프랑스를 넘나드는 여행은 숙소에 들어와 짐을 푸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숙소는 가격 대비 아주 좋았다. 호스텔이라고 했는데 호텔 수준 이상이다. 방도 2인실이기에 정말 좋았고 숙소 인근의 슈퍼는 밤 12시가 되어 가는데도 영업 중이었다. 피로와 긴장도 풀 겸 와인과 음식을 사 와 숙소에서 늦은 파티를 열었다.
늦은 아침 일어나 인근의 식당에서 음식을 사 와 아침을 먹고 기차역에 나가 본다. 니스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9시간에서 10시간이 걸리는데 여기는 예약을 해야 되는 구간이 있고 예약을 안 해도 되는 구간이 있는데 지금은 프랑스의 기차가 파업 중이라 예약을 받아 줄 수 없다는 거다.
그러면 예약 없이 가는 기차는 지역을 운행하는 기차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지금은 프랑스의 기차 파업 중이니 더욱 그렇다.
지금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와 그렇게 간다고 해도 오늘 바르셀로나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하루 더 여기에서 묵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첫차를 타고 리스를 떠나기로 한다. 리스에서 바르셀로나 방향으로 가는 첫 기차는 새벽 5시 55분에 출발한다.
니스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휴양지이면 물가도 비싸고 바가지도 씌우고 그럴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기야 휴가철의 성수기가 지난 탓도 있겠지만 숙소도 저렴하고 시설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음식의 가격도 저렴하며 맛있고 더욱 좋았던 것은 아름다운 경치다.
숙소에 들어와 철도 파업 때문에 하루 더 묵겠다 하며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요금으로 잘 수 있느냐 했더니 그것은 안 된다고 한다. 같은 가격으로는 다인실로 방을 옮겨야 된다고 하여 옮겨서 새로운 말 벗 친구를 만났다.
프랑스 청년인데 요리사의 일을 배우고 있다며 여기서 잠만 잔다고 한다. 내가 먹던 술이 조금 남았고 그 친구도 먹던 술이 있다. 같이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담배를 피우는데 창문을 열고 살짝 피우는데 냄새가 조금 나도 참아 줄 수 있겠느냐며 양해를 구한다.
그러라고 하며 선물로 가지고 다니는 한국산 담배 한 갑을 주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여행하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한국산 담배를 선물하면 많이 좋아한다. 새로운 담배 맛도 있겠지만 유럽이나 미국, 특히 캐나다 같은 곳은 담배값이 무척이나 비싸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는 남대문 시장 등에서 파는 한국의 전통 문양이 있는 노리개 같은 것이 인기다. 자기도 어디 여행 가서 사 온 성당의 카드 같은 것을 아내에게 선물로 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제 겨우 20살의 맹랑한 친구였다.
아주 짧은 2박 1일(잠은 2박이지만 늦은 밤 도착해서 새벽에 나갔으므로 1일만 있었던 셈)의 리스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우리들의 유럽 최종 목적지인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그래도 유레일패스는 5일간 더 탈 수가 있다.
좀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유튜브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