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 클레어 Nov 19. 2023

영화 '존 윅' 보는 여자

그와 킬러 영화를 예습하고 봤습니다  

나는 무서운 영화를 못 본다.

칼부림하는 폭력물들은 살 떨려서 더욱 못 본다.


식인상어를 소재로 한 영화 '죠스'의 경우 무서운 장면이 거이다 삭제된 채, 공중파 TV인 <주말의 화> 방영될때에나 봤다. 그마저도 겨울 이불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겨우 봤다.


영화 '친구'도 영화관 상영 끝나고 수년 뒤에나 집에서 다운로드하여 봤는데, 괜히 봤다 싶었다.

 

'이런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일까? 기묘하고 왜곡된 취향들이다'


무서움은 영화의 작품성이나 흥행을 압도하더니 이내 회의감을 남겼다. 한창 이 영화가 흥행할 때, 영화중 대사인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가 개그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에서 패러디 되길래 그 장면을 원본 화면에서 보겠다는 취지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장면을 보고는 솔직히 토가 나올 뻔했다. 너무 잔인해서 말이다. 나 같이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에겐 영화의 작품성이나 메시지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나의 비위나 감당 가능한 수위를 넘어선다면, 그때부터 이미 그 영화는 내게 좋은 영화가 아닌 게 된다. 적어도 나처럼 무서운 영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말이다.


물론 장동건 엉아는 멋지지만 이미 다른 여자 곁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런데, 바로 그런 내가 무섭고 잔인한 폭력물인 킬러(청부살인 및 느와르 장르) 영화 <존 > 보게 된 것이다.


천재는 인류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야 하는 직업에 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의 취향과 삶은 가끔 건강, 안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때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영화 취향이다. 천재는 톰 크루즈의 열혈팬으로서, 그의 영화는 모두 섭렵했고 해당 영화들은 아예 개인 소장하고 있다. 작년에 처음 그와 본 영화도 톰 쿠르즈의 <탑건 2> 였다.


나는 집이나 직장 어디서든 음식이나 여행, 영화 등 해당 취향에 자기 색깔이 명확하지 않아서 대세에 한 표를 던지는 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너무 야하거나 무섭지만 않다면 대세나 상대방 취향을 따른다.


사실 내가 살면서 영화관 간 게 손에 꼽힌다. 내가 영화관 가서 처음 본 영화가 절친이 보여준 <서편제>와 공짜표라서 본 <달마가 동편으로 간 까닭>이라는데서, 나의 영화 여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이나 사색, 음악, 봉사는 좋아하지만 여행, 놀이 등 외부활동 대부분에 그닥 관심이 없다. 영화의 경우 그것을 기피한다기보다 집순이인 나는 집이 더 좋은 것이다.


천재도 생각보다 검소하고 여행이나 놀이동산 이런 외부활동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도 책을 읽거나 음악이나 영화, 글을 쓰는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당연히 나처럼 지독한 집돌이다.


그런 천재도 영화에 해서는 아낌없이 외부활동을 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보고 싶은 영화의 개봉 첫날 1회를 보기 위해서, 차로 편도 3시간 넘게 걸려 찾아가 보았다 한다. 천재는 영화 매니아다. 그는 낭비가 그닥 없는데, 엄청난 양의 영화와 음악들은 직접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는 이 물건들을 소장하기 위해서 굶식 겸 다이어트를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천재는 모든 영화 장르를 섭렵했고 그중에서도 느와르 장르도  좋아한다. 느와르 장르란 범죄나 사회적 윤리 같은 소재를 사용해 어두운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작품군을 칭한다고 한다. 가령 액션 시리즈에도 결합되어 있는데, <존 윅 시리즈>와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대놓고 느와르물이며, <제임스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007 시리즈> 역시 느와르적인 요소들이 많은 영화들이다. 천재는 이런 영화들의 시리즈 전편을 모두 보았다.



올봄 4월에 영화 <존 윅 4>가 개봉되기도 전부터 연신 존윅 얘기를 하는 천재. 내가 웬만하면 취향을 맞춰주는데, 이건 좀 고민이 되었다. 그래 <존 윅>이 뭐 하는 영화인가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때 한 영화 소개 채널 유투버가 던진 멘트가 나의 오기와 도전 정신에 불을 질렀다.


"존 윅을 함께 볼 수 있는 여자는 최고의 여친입니다"


나는 속으로 '래?'라고 생각하며, 이왕 최고인 거 최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리라는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우선 보지 않았던 존윅 전편인 1편, 2편, 3편의 요약본 내지는 영화평을 담은 유튜브 영상들을 여러 개 보며 예습했다.


그리고 천재에게 이왕 볼 거 개봉 첫날 보자며 자신감을 내비치며 더불어 가슴이 쫄려 하면서, 개봉일에 함께 영화관에 갔다. 물론 영화는 천재가 보여줘야 마땅했다.


영화를 다 본후 천재가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영화 어땠어?"

"아주 재밌었어. 전편보다 더 나은 것 같아. 폭력물인데, 생각보다는 그렇게 잔인하지 않고 깔끔하네"

"그렇지? 전편보다 더 잘 만들었단 말이야"

"응! 키아누 리브스가 역쉬"


천재는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최애 영화를 픽해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는 것과 팬심 가득한 영화가 잘 만들어진 것에 대한 뿌듯함에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최고 여친 야심은 이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인터넷으로 후기며 전작들의 평가, 존윅4 관객수 등을 며칠째 찾아보며 천재에게 보고하듯 공유했다.


그 즈음되니깐. 천재가 살짝 반색하는 눈치다. 내가 키아누 리브스에게 관심이 생겼나 싶은가도 보다. 그러나 이내 내가 원래 한번 필이 꽂이며 샅샅이 정보를 훑는 성향임을 상기했다.



얼마 후 내가 매주 가는 봉사모임의 소모임 나눔때였다. 각자 삶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중년의 학부형인 어머니께서 사춘기 아들을 맞춰주며 살기가 너무 힘들다면 하소연을 하셨다. 


"이 얘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서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는 다소 심각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최근에 천재와 존 윅 영화를 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예습까지 해서 봤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얘기했다. 그 뒤로는 천재도 나를 맞추기 위해 자발적으로 애쓰는 여러 에피소드를 조금 공유하면서 말이다. 사실 천재는 작년에도 그 봉사모임에 몇 번 함께 와서, 모임 밖에서 나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래 작년 그 모임 리더십뿐 아니라 몇몇 봉사자분들은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 그때 그를 떠올렸던듯, 내 앞에 계신 남녀 학부형인 중년의 봉사자들께서는 하나같이 말씀하셨다.


"아이구, 여자분이 그런 영화를 함께 봐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걸 예습까지 해서 봤다니.

진짜 좋은 짝이네요. 아주 감동적이에요"


그리고 좀 전에 눈물을 흘렸던 어머니 봉사자께서는 눈이 땡그러지시더니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씀하셨다.


"제가 오늘 큰 깨달음이 왔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진짜요."

 


나는 여전히 무서운 영화 특히 잔인한 영화는 안 좋아한다. 그러나 천재가 느와르 영화 보단 좀더 따뜻한 영화를 더 많이 보기까지 오래도록 그의 취향을 존중하며, 기다려 주며 또 가끔은 함께 볼 예정이다. 생각해 보면 느와르 영화나 내가 종종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PD수첩'이나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실생활 편이 느와르 영화라고 생각하니깐, 천태만상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시청각자료라 스스로 설복되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영화만 한 게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천재의 영화 취향을 이 지점에서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말이다.


나는 올해 영화 ' ' 으로 누군가에 최고의 짝이 되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7절)





<나는 '존 윅' 영화 보는 여자>와 관련된 클레어의 글

광화문 글판(1) 제일 아름다운 풍경 (brunch.co.kr)

내 브런치 글을 읽었을까? (brunch.co.kr)

아주 웃는 날에 (brunch.co.kr)

죄책감 갖지 않게 (brunch.co.kr)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매거진의 이전글 죄책감 갖지 않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