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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Dec 05. 2024

3. 나는 결혼을 했을 뿐이다

별책부록이 있었다. 아주버님이라는.

 결혼한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아들 이름을 아주버님과 똑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용돈이나 보내드렸으면 됐지 아들 이름까지, 정말 대단한 우애다. 아주버님은 축하 선물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라는 그림을 보내주셨다. 내가 보기에도 색감과 터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침대에 누웠을 때 편하게 보이는 자리에 그림을 걸어주었다. 매일 본다. 자기 전에, 아들에게 수유할 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항상 눈에 들어온다. 내가 보는 하늘빛보다 더 맑아 보이기도 하고, 꽃봉오리에서 꽃이 정말 터져 나올 듯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버님이 정말 화가 맞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림은 그림이고 아주버님은 아주버님이다.



  우리 집에 오셨던 아주버님은 좀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무뚝뚝했다.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 같았다. 가까운 곳에 나갈 때도 늘 캔버스와 화구를 다 들고 나가셨다. 테오의 말로는 아주버님이 가리는 음식이 없으시다고 해서 음식차리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잘 드시는 것 같진 않아 입에 안 맞으신건가 싶어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버님은 늘 ‘고맙다, 맛있다’라며 인사를 건내셨다.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의 전부였지만, 덕분에 어려웠던 내 마음이 그나마 조금은 편해지기도 했다.


 나는 남편과 아주버님과 함께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어도 어린 아들을 보느라 여유있는 식사는 어려웠고 대화에 잘 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며 가며 엿듣는 중엔 아주버님이 짜증을 내시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다가 둘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후원자인 동생에게 짜증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후에 내가 물어보면 남편은 별일 아니라고 했다. 이해가 안 된다. 이게 별일이 아니면 뭐가 별일이라는 건지.


 “뭐 때문에 그렇게 언성이 높아진거야?”

 “별일 아니야.”

 “아주버님이 식탁을 막 치시던데?”

 “내가 형 말을 잘못이해해서 그런거야.”

 “그렇다고 동생한테 그렇게 역정을 내셔? 자기도 화냈잖아.”

 “형제지간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요안나.”

 “나 내일 형 여기서 떠나기 전에 물감을 좀 사러가야 할 것 같아.”

 “물감?”

 “형이 원하는 색깔이 있어서. 아침에 좀 서둘러야 해.”

 “또?”

 “……”

 “자기랑 파리를 샅샅히 뒤져서 물감 보낸 게 얼마 전인데?”

 “형은 화가잖아.”

 “……”



 남편과 아주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싸한 기운이 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지만 그 싸한 기운은 분명히 있다. 그런 기운은 남편도 느꼈었는지 어느 날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실린 아주버님에 대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안목 있는 평론가들이 아주버님의 그림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기사였다. 나도 <꽃피는 아몬드나무>를 보면서 충분히 평론가들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버님에 대한 마음을 좀 부드럽게 해달라는 테오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 쉽진 않았지만 나도 조금씩 마음을 풀며 아주버님도, 아주버님의 그림도 미술시장에 나와 반응을 좀 얻었으면 싶었을 때, 아주버님이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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