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아들 이름을 아주버님과 똑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용돈이나 보내드렸으면 됐지 아들 이름까지, 정말 대단한 우애다. 아주버님은 축하 선물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라는 그림을 보내주셨다. 내가 보기에도 색감과 터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침대에 누웠을 때 편하게 보이는 자리에 그림을 걸어주었다. 매일 본다. 자기 전에, 아들에게 수유할 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항상 눈에 들어온다. 내가 보는 하늘빛보다 더 맑아 보이기도 하고, 꽃봉오리에서 꽃이 정말 터져 나올 듯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버님이 정말 화가 맞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림은 그림이고 아주버님은 아주버님이다.
우리 집에 오셨던 아주버님은 좀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무뚝뚝했다.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 같았다. 가까운 곳에 나갈 때도 늘 캔버스와 화구를 다 들고 나가셨다. 테오의 말로는 아주버님이 가리는 음식이 없으시다고 해서 음식차리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잘 드시는 것 같진 않아 입에 안 맞으신건가 싶어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버님은 늘 ‘고맙다, 맛있다’라며 인사를 건내셨다.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의 전부였지만, 덕분에 어려웠던 내 마음이 그나마 조금은 편해지기도 했다.
나는 남편과 아주버님과 함께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어도 어린 아들을 보느라 여유있는 식사는 어려웠고 대화에 잘 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며 가며 엿듣는 중엔 아주버님이 짜증을 내시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다가 둘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후원자인 동생에게 짜증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후에 내가 물어보면 남편은 별일 아니라고 했다. 이해가 안 된다. 이게 별일이 아니면 뭐가 별일이라는 건지.
“뭐 때문에 그렇게 언성이 높아진거야?”
“별일 아니야.”
“아주버님이 식탁을 막 치시던데?”
“내가 형 말을 잘못이해해서 그런거야.”
“그렇다고 동생한테 그렇게 역정을 내셔? 자기도 화냈잖아.”
“형제지간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요안나.”
“나 내일 형 여기서 떠나기 전에 물감을 좀 사러가야 할 것 같아.”
“물감?”
“형이 원하는 색깔이 있어서. 아침에 좀 서둘러야 해.”
“또?”
“……”
“자기랑 파리를 샅샅히 뒤져서 물감 보낸 게 얼마 전인데?”
“형은 화가잖아.”
“……”
남편과 아주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싸한 기운이 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지만 그 싸한 기운은 분명히 있다. 그런 기운은 남편도 느꼈었는지 어느 날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실린 아주버님에 대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안목 있는 평론가들이 아주버님의 그림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기사였다. 나도 <꽃피는 아몬드나무>를 보면서 충분히 평론가들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버님에 대한 마음을 좀 부드럽게 해달라는 테오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 쉽진 않았지만 나도 조금씩 마음을 풀며 아주버님도, 아주버님의 그림도 미술시장에 나와 반응을 좀 얻었으면 싶었을 때, 아주버님이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