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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Dec 05. 2024

9. 오베르 쉬르 우아즈

아주버님의 마지막 70일

 “여기 여인숙에서 하루 묵을 수 있나요? 오늘 빈 방 있어요?”

 “여인숙요? 저희 식당만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저희 여인숙도 있었던 거 어떻게 아시죠? 오래 전 일인데..”

 “아니, 그냥 위층에 방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게…옛날에… 한 이삼십년쯤 됐나… 어떤 화가라는 사람이…….”


 그 때 갑자기 사장님의 아내로 보이는 부인이

 “여인숙은 남는 게 없어서 접었어요.”

하며 사장님을 흘겨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처음 보는 손님한테 별 얘길 다하고 있네. 식사나 갖다드려요”

 그때 그 사장님이 여전히 운영하고 계시나보다. 사건은 사건이었지. 이 작은 마을에서 그 일이 얼마나 큰 소동이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밥을 먹으며 천천히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한 쪽 구석 벽에 아주버님이 그리신 것 같은 그림이 걸려있다. 터치와 색깔이 딱 아주버님이다. 아주버님이 머무시던 방에 있던 그림은 내가 다 챙겨 갔었는데, 식당에 걸려있던 그림도 있었나보다. 사장님의 따님을 그리신건가. 홀에 나와 계신 분 중에는 그림이랑 닮아 보이는 분이 없다. 그림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이어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나야 반갑지만 이 분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곳에서는 그냥 테오와 아주버님,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게 좋겠다.




 식사를 마치고 오베르교회 쪽으로 올라간다. 교회 앞에서 남편을 이장하는 절차가 원활하고 안전하게 진행되었음에 감사드리는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다가 고개를 돌리니 밀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이다. 파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 바람결에 부서지는 나뭇잎의 소리가 다정하다. 햇빛에 반짝이는 풀들도 눈부시고. 아주버님의 편지에 ‘오베르, 이곳은 심각할 정도로 멋지다.’라고 쓰신 적이 있다. 정말 멋지구나. 정말 멋진 곳이구나. 이런 햇볕을 받으며 아주버님은 그렇게 많은 그림을 마술부리듯 그리셨구나.



 밀밭 사이를 걸어간다. 빛과 풍경 속에서 느꼈을 아주버님의 충만한 만족감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밝은 빛과 멋진 풍경이 내 눈앞에 가득 차있으니 보이는 대로 그려 낼 수만 있다면 그 감동은 말해서 무엇하랴. 심각할 정도로 멋진 곳에서 심각할 정도로 멋진 그림을 매일매일 쏟아낼 만큼 그림에 목숨을 바치고 정신을 쏟아 부으신 아주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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