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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Dec 09. 2023

‘열심히’보다 이것

노을님은 퇴직 후 10개월을 집에서 방바닥과 물아일체 상태로 나날을 보냈다.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간수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이 덮쳐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가보려 했지만 정작 나갈 곳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바빠서, 은퇴 후에는 집콕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집 건물 1층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딸의 권유로 도서관에서 하는 음악치료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마저도 귀찮고 계속 누워있고 싶었으나 그 후의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오기 시작했다. 


집을 나와서 활동하다보니 다른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글쓰기 모임에도 문을 두드렸다. 글을 써 본적도 없고 쓸 줄도 모르지만 옆 사람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매주 시를 써 와서 낭독해 주었다. 


어느 날, 돈을 벌고 싶은데 이 나이에 뭘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요양보호사 일을 생각해 냈다. 자격증 과정을 알아보는 것도 귀찮고,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크다고 했다. 수업만 잘 들어도 어렵지 않게 해 낼 수 있을거라며 선배로써 아낌없는 조언을 주었다. 자격증 공부를 위해 글쓰기 수업을 잠시 멈추기로 하고, 자신의 자리를 남겨두라는 당부와 함께 떠났다. 방에서 뒹굴며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그녀는 2, 3개월 만에 세 가지 활동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당분간 그녀의 시를 읽지 못해 아쉽지만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돌아올 것이다. 




노을님은 은퇴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면서 또 일을 할까 하고 기웃거립니다. ‘그만 쉬어도 되잖아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또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제적 보탬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태해진 자신이 못마땅한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방바닥 껌딱지처럼 붙어 지내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을까요. 평생을 바지런 떨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까지의 망설임은 곧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트리플 악셀을 선보이며 활개를 펼쳐보였지요. 성형외과의 before와 after 차이보다 더 크게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으로 봐서는 열심히 살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지요. 한때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풍조가 난무했었습니다. 지금은 또 열심히 사는 삶이 마치 죄악인양 덤비는 세상입니다. 


저자는 열심히 살면 안 된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수용할 수 없었다고 했어요. 세상이 나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면서 그 열정을 약점으로 착취하려 드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도 했지요. 하지만 그 열정이 나를 위해 쓰여 진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와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는 상반된 것 같지만 실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노력에 비례하여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자는 그것은 용기라고 했습니다. 노력보다는 용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의 열정을 발휘하여 도전하는 용기, 또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 말입니다. 이불을 박차고 나온 용기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노을님의 용기에 진한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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