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시체 청소부 (5)

by 희연

< 우리 가족 모두 건강... >


비둘기 시체 다리에 묶여 있던 여섯 번째 천 조각에서 알아볼 수 있는 글씨는 그 정도였다. 그래도 지금껏 발견한 것 중에 가장 깨끗한 편이었다. 한참을 읽고 읽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 우리 가족 모두 건강. 그 뒤에 글씨는 뭉개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천에 쓴 글씨이기 때문인지, 원래 글씨체가 이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7살 아이가 쓴 것처럼 큼직하고 어설펐으며, 삐뚤빼뚤했다. 가족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녹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단촐한 책상 위에 최대한 깔끔하게 펼쳐 둔 천 조각을 노려보아도 대체 이게 왜 비둘기 시체 다리에 묶여 있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대로 버릴 수는 없고 일전에 수집한 천 조각 다섯 개와 같이 상자에 아무렇게나 넣어두기도 애매해서, 쓰다 만 공책 맨 뒷장에 붙여 두기로 했다. 투명 테이프가 필요했지만, 겸손한 고시원 살림에선 사치 같아 사 본 적이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집 근처에 뭐든 천 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허름한 문구점을 생각하며, 천 조각은 공책에 끼워둔 채로 덮었다.


*


그 어떤 로맨스 영화도 이 상황보다 더 진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구점에서, 마지막 남은 테이프에 내 손과 그 여자의 손이 동시에 닿았고, 눈이 마주치니 여자는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마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뱉지 않았을까.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고.


"청소부 씨!"


휴일이 오늘까지 그렇게 불리고 싶지는 않은데요, 약간 짜증을 섞어 대꾸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이 동네 살아요? 보통 청소 구역은 거주지와 먼 곳에 배정해 줄 텐데, 의외네요! 반가워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만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건지, 여자는 '이렇게'라며 말을 이어가려다 멈추고 다음 단어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정적이 우리 사이를 머무는 틈을 타, 목표였던 테이프를 꺼냈다. 여자는 아차, 소리를 내고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필요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보다는 더 필요해 보여서였을까, 내게 스스럼없이 아는 체하며 인사한 게 묘한 감정을 일으켜서였을까. 어차피 저는 한 번만 쓰면 되니까, 하고 말을 덧붙였다. 테이프를 여자에게 건네니, 여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제가 돈을 주고 살 테니까, 쓰실 만큼 쓰시고 제게 다시 주세요."


내가 먼저 베푼 친절을 또 다른 친절로 돌려주려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이전에 입고 있던 비둘기 색 거적때기는 더 이상 두르고 있지 않았다. 눈빛도 명랑했다. 비둘기 똥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때의 불쾌감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차분하게 뜯어보니, 그렇게까지 혐오스러운 외모는 아니었다. 비둘기와 어울려 앉아 있던 풍경에서 한 발 밖에 나와 있는 여자는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부드럽고 성숙한, 어떤 순수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세차게 저어 상념을 떨쳤다.

그 사이 여자는 테이프 값을 지불하고 문구점 출입구에 멀뚱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요."


어디를?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여자는 밝게 웃으며, 청소부 씨 집요, 지금 가서 쓰시고 바로 주세요, 저도 써야 하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구는 모습에 웃음도 나지 않았다. 제발 가는 동안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한숨과 함께 앞장서 걸어 나갔다. 차라리 빨리 볼일을 마치고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곧장 내가 사는 고시원이 있다. 회백색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 놓은 것도 세월의 때를 타서 허름했고, 낡은 간판이 건물의 용도를 겨우 알려주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 테잎를 건네받았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방으로 올라왔다. 떠날 때와 다름없이 냉기가 도는 방은 안락했다. 작은 싱글 침대와 벽에 붙은 책상에 전부인 좁고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지금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간이다. 휴일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곳 만큼은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여자를 얼른 내쫓아야 했다.

공책을 펼쳐 테이프로 조심스럽게 천 조각을 고정했다. < 우리 가족 모두 건강... > 글자를 다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었다. 손에 든 테이프와 천 조각을 번갈아 보다가, 상자 속에 있던 나머지 천 조각들도 공책에 붙여두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재고할 틈도 없이 테이프를 길게 늘어뜨려 잉크가 제멋대로 번진 다른 천 조각들도 차례로 공책에 붙였다. 마법처럼 흩어진 잉크가 모여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테이프를 여자에게 돌려주러 다시 나왔는데, 여자는 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위 소설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명, 지명, 사건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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