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기
8. 짐 싸기
캐리어에 삶을 구겨 넣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던 날, 30kg짜리 캐리어 하나와 작은 백팩에 짐을 싸면서, 내 삶도 함께 욱여넣었다. 앞으로는 이 무게 만큼만의 삶만 감당하며 살아야지, 언제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게,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 만큼의 짐만 꾸리고 살아야지. 그런 다짐을 했던 것 같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돌아와 부모님과 살며 안락하게 지내다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캐나다 유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서울에 머물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물건에 둘러싸인 삶이었다. 겨우 2년 남짓 서울에서 보내는데, 어찌나 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그런데 갖고 싶은 것들은 더 많았다. 돈을 벌어도 벌어도 유학할 만큼 돈이 모이지 않은 이유가 다른 데 있던 게 아니었다. 물질의 풍요로 마음의 가난을 채웠다. 그래서 어느덧 작은 원룸에는 내가 소유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소유가 미덕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한 번도 내가 실천해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면서 캐나다로 가져갈 것들을 헤아려보니, 정작 반드시 가져가야 할 만큼 필요한 게 많진 않았다. 서울의 월셋집을 정리해 고향으로 내려가려니 불필요한 물건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어쩌자고 이런 물건들에 욕심을 내었을까. 출국 날짜를 어느 정도 정해두고 서울 집을 정리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캐나다로도 고향으로도 가져갈 수 없는 물건들을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에게 부족한 것을 저렴하게 넘겼고, 서울에 사는 친구 중 필요한 사람들에게 차례로 나눠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분할 물건 리스트를 정리해서 친구들에게 알렸고 친구들은 우물쭈물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찜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짐인 퀸사이즈 침대와 2인용 식탁과 소파 세트는 두 명이 같이 용달을 불러 한꺼번에 나눠 가져가기로 했다. 그 외 작은 전자기기들도 잡동사니라고 불릴만한 것들도 필요하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우선 나눠줬다.
친구들에게 물건들을 나눠준 후에는 옷 정리를 시작했다. 한동안 입지 않은 옷,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을 정리해서 두 상자나 버렸는데도 산만큼 남아있었다. 이렇게 나는 가진 옷이 많은데 어쩜 매번 옷 입고 어디 나가려 하면 입을 옷이 없었을까. 정말 이 옷들을 다 내가 입으려고 남겨둔 것이었을까. 다시 상자에 옷을 구겨 넣으면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고향 집으로 가져갈 옷도 두 상자나 되었다. 캐나다에 다 가져갈 수도 없는데도.
종이책들 역시 큰 짐이었다. 책은 역시 종이로 읽어야지, 라는 마음이 강해서 웬만한 책은 종이로 된 걸 사서 읽었다. 읽은 책 읽지 못한 책, 읽을 책, 읽고 싶은 책. 이미 고향에도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이 잔뜩이었는데, 엄마가 언제고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들이 내 키만큼 쌓여 있는데, 또 집으로 이 책들을 다 가져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역시 나눔밖엔 답이 없다며,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책들을 모두 선물했다.
정말 내 물건이 없다고 여겼는데도, 내가 소유한 물질이 너무 많았다.
마침내 서울 집을 서울 집을 정리하는 날, 아빠가 고향에서 올라오셨다. 차에 실어야 할 짐을 보고는 기겁을 하셨고, 그래도 어떻게 트렁크와 뒷좌석에 잘 구겨 넣고 꽉꽉 채워 잘 실었다. 엄마가 함께 오려고 했던 걸 안 오셨던 게 다행이었다. 아빠 차에 빈틈없이 꾹꾹 들어찬 3년의 내 서울살이가 심히 무거워서 차가 기우뚱했다.
고향 집으로 돌아와서도 짐 싸기가 끝난 게 아니었다. 고향 집에 남겨두어야 하는 것, 남겨 둬도 괜찮은 것 혹은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들을 하나씩 빼고, 캐나다로 가져가야 할 것들을 추려야 했으니까. 호주로 떠날 때처럼 1년 반짝 있다가 돌아올 게 아니라 최소 3년은 머물러야 할 테니, 좀 더 꼼꼼히 싸야 했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한 개, 그리고 배낭에 짐을 챙겨 넣었고 그렇게 꽉꽉 눌러 담았는데도 뭔가 더 가져가야 할 것처럼 모자란 기분이 들었다.
짐 싸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확실히 호주를 갈 때보다 많아진 짐은, 혼자서 옮기기엔 벅차 보였다. 그래도 이게 지금 내 삶의 무게라 생각하며 견뎌 보기로 했다. 나를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Copyright. 2020.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