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표를 구입하기도 전에 송별회를 했다
9. 비행기 표를 구입하기도 전에 송별회를 했다
서울 집을 정리하며 송별회를 기획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에 살았으니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파티룸을 빌리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도 준비했다.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서울 집에 남아 있는 짐을 정리하는 것에 가까웠다. 고향으로 가져갈 수 없는 것들, 가져가기 애매한 것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친구들에게는 나를 위한 선물은 준비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쩐지 떠나는 처지에서 짐을 늘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포틀럭 파티처럼 함께 나눠 먹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비건인 친구도 있었고 나도 비건식을 지향하고 있는 터라 비건식을 특별히 요청했고, 친구들은 내 요구를 잘 들어주었다.
나에겐 모두 '친구'였지만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매개가 되어 처음 만나는 (실은 이전에 비슷한 파티에서 한 번 정도는 본 적이 있는) 사이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기소개를 했고, 앞으로 5년 후 본인의 모습을 다짐처럼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5년 후의 나를, 2024년의 나를 이렇게 그렸다. 계획대로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선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캐나다 영주권을 딴다. 그러니까 5년 후에는 캐나다 영주권자가 된 내 모습과 그걸 발판으로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기반을 다지고 있는 내 모습을 말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이루어보고자 마음먹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길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다.
"그래서 캐나다는 언제 가?"
사실 송별회를 할 때까지도 비행기 표를 사지 않았다. 떠나는 건 정했지만 '언제' 떠날지를 정하지 못해서 어영부영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안 가는 거 아냐? 하고 우스갯소리도 나왔는데, 어쩌면 친구들과 이렇게 모여 웃으며 놀 수 있는 날을 떠나보내기 어려워서 그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치료를 다니던 병원에서는 나의 캐나다행을 많이 걱정하셨다. 내가 겪는 우울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외로움을 이야기하시며, "거기 가면 많이 외로울 거예요, 친구들도 없을 테고요."라며 병증이 악화할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막상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었다.
친구들이 가까이 있는 서울에 살면서도요,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어도 저는 외로웠어요. 캐나다에 간다고 더 많이 외로울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냥 이 외로움은 저랑 평생 함께 살아야 할 감정이고 어쨌든 제가 지고 가야 할 무게니까요.
그때는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생각도 했는데. 막상 떠날 생각으로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면서는 다른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았다. 떠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서 와준 친구들, 내 앞길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 캐나다와 한국의 시차를 생각했을 때, 지금처럼 계속 연락하고 지낼 수 있을까? 분명 같은 서울에 살았어도 잘 못 만나던 사이였던 건 맞지만, 한국과 캐나다의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면 어떡하지?
외로울까 봐 걱정되는 것보다는 내게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정말 나 홀로, 나의 모든 기반을 여기 두고, 나는 떠날 수 있을까?
하지만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5년 후에는 캐나다 영주권자가 되어 있을 거라 호언장담까지 한 마당에, 두려움 때문에 떠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곧 떨어져 지내게 되어도, 한동안 만날 수 없더라도. 이 송별회의 추억과 친구들의 사랑, 지지를 받은 기억을 바탕으로 잘 해내 봐야지. 나는 이만큼의 응원을 받은 사람이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거라고. 불안감 속에 자신감도 솟았다.
송별회가 끝난 다음 날,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정말로 간다.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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