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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pr 17. 2020

화가들은 6․25전쟁을 어떻게 그렸을까

정준모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마로니에북스, 2014)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6․25전쟁 시기의 미술은 뜻밖에도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단 남아 있는 기록과 작품이 드뭅니다. 전쟁은 그만큼 많은 것을 앗아갔죠. 따라서 연구를 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이라는 관점에서 그 시기를 들여다본 저작이 희귀한 이유입니다.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돋보입니다. 일반 독자가 접할 수 있는 6․25전쟁 미술에 관한 책으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점은 친일 청산과 분단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이 책에 언급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전쟁과 분단에 이르는 시기를 살았던 화가들의 상당수는 과거의 전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친일 부역자였던 화가가 어느 날 반공 투사로 변신하는 모습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화가들이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맥락을 연결해보면 유사한 사례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죠.     


게다가 월북 화가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미술사가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나마 이념에 관한 편견과 색깔론이 상당 부분 희석된 덕분에 최근에는 북한미술 관련 저작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출간된 박계리의 《북한미술과 분단미술》(아트북스)이 대표적입니다. ‘반쪽짜리 미술사’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꽤 많은 전쟁 그림들을 우리가 보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눈여겨본 아래의 작품들은 모두 개인 소장품입니다. 이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볼 기회는 극히 드뭅니다. 전쟁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이라 재료가 번듯한 것도 아니어서, 보존 상태가 어떤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예컨대 장욱진 화백은 <나룻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캔버스를 구하지 못해 피난길에도 늘 품에 안고 있었던 <소녀>(1939)의 뒤쪽에 <나룻배>를 그렸다.” - 129쪽에서 재인용     


김기창 <피난민>, 1953, 비단에 채색, 72×100, 개인 소장



김환기 <부산항>, 1952, 종이에 수채, 22×38, 개인 소장



장욱진 <나룻배>, 1951, 판지에 유채, 14.5×30, 개인 소장



이 책이 출간된 건 2014년. 그 뒤로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책이 나온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변월룡과 이쾌대 특별전을 열었고, 두 전시는 ‘공백기의 미술’에 갈증을 느껴온 많은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죠. 전시회에 맞춰 발간된 도록의 소장 가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 점을 염두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자료집으로서 이 책이 지닌 가치는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독자가 지적했듯이 수많은 그림을 소개해 놓았지만, 아쉽게도 정작 작품에 관한 설명이나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술가들의 행적을 나열한 대목이 대부분이죠. 책 제목만 보고 덥석 펼쳤다간 실망하기 좋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만한 작업을 해낸 저자에게 그것까지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있는 작품 소개와 해설은 다른 연구자들의 몫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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