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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따뜻한 살인. 13 (효라빠 장편소설)

by 효라빠

야간 자살 사건은 주형에게 크게 와닫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는 일까지 신경 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퇴근 무렵 담당실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3 동하 교사 이주형입니다. 말씀하세요.]

[이 부장. 나야]

[성균 형님?]

[엉.]

[조금 있으면 퇴근인데 무슨 일이세요?]

[퇴근하고 집으로 가?]

[그렇죠. 왜 그러시는데요?]

[특별한 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을까?]

[저녁이요?]

둘은 형, 동생으로 지내자고 했지만 밖에서 업무 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 성균이 퇴근 후 밥을 먹자고 하자 다소 의아했다. 안 좋은 일이 있는 뒤로 사람들과 모임을 하지 않는 주형이라 성균의 밥 먹자는 말이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자네한테 할 말도 있어 그러니 시간 좀 내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주형은 거절할까 하다 할 말이 있다는 성균의 말에 그러자고 했다. 그들은 회사 근처 고기 집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요즘 고생 많지?"

"그냥 그렇죠."

밖에서는 처음이라 말에서 어색함이 묻어났다. 수저를 놓는 등 정리를 끝내자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이 먹기 좋게 익었다.

"출출할 텐데 고기 좀 먹어"

"형님도 드세요"

"소주도 한 잔 해야지?"

"그러시죠"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걸쳤다.

"왜 보자고 하셨어요?"

주형이 성균을 쳐다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성균이 뜸을 들였다.

"뭐가요?"

"자네가 담당하는 사동에 1800번 곽태성이라고 있잖아"

"네."

"그놈 생활 잘해?"

"그런대로 조용히 잘 지내는데요."

"그래."

"뭐 있습니까?"

"......"

주형의 반문에 성균이 바로 답하지 못하고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캬~ 쓰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쓰다'는 말에 많은 의미가 묻어 있었다. 범죄자를 매일 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맨 정신으론 힘들었는지 성균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연거푸 몇 잔의 소주를 더 마셨다.

"빈 속에 들이부으니 취하네. 내가 하는 말 듣고 너무 충격받지 마. 어쩌면 이게 우리 교도관의 숙명일 수도 있으니."

"무슨 말씀을 하려고 거창하게 그러세요?"

"말 돌려봐야 답답하기만 할 테니 있는 그대로 말할게"

취기 오르자 용기가 생겼는지 성균이 주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곽태성 있잖아?"

"네."

"그놈이 자네 조카를 살해한 범인이야"

'철그랑~'

주형의 손에 들려 있던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곽태성이 뭐라고요?"

"그놈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사실이에요?"

주형이 다시 물었다. 떨어진 젓가락이 다른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네 조카 시신에서 DNA가 발견 됐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했지? 아마 한창 수사중일 때 곽태성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얼마 전 DNA채취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DNA를 채취해 우리가 검찰청에 보내고 있잖아, 조카 시신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DNA가 우리 소에서 발견 됐어. 그게 곽태성이야. 그 정도면 거의 범인이나 다름없지"

'쾅!'

벌벌 떨며 말을 듣고 있던 성균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으아아~~~'

갑자기 소리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변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주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으아아~"

"주형아 일단 진정하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조금만... 조금만..."

"형님~ 이게 진정할 일입니까. 내가 그렇게 잘 챙겨 줬던 놈이 우리 은혜를 죽인 살인범이고, 그놈이 내 사동에서 버젓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게 진정할 일이냐고요?"

주형이 흥분해 성균을 쳐다봤다. 그의 빨갛게 변해 버린 눈에는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 마음 이해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중심 잡아야 하지 않겠냐?"

"하하하. 중심이라... 중심 좋죠. 하하하"

소리 지르던 성균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형님. 사는 게 왜 이렇게 좆같습니까. 왜 이렇게 좇같냐고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안은 듯한 눈빛으로 성균을 쳐다봤다.

"그러게 인생 참 더럽다."

"그놈은 제가 죽일 겁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왜요? 죽이면 안 됩니까? 그놈은 우리 은혜를 죽였습니다. 그것도 끔찍하게. 아니죠 은혜만 죽인 게 아니라 우리 형도 죽였습니다. 은혜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형이 자살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둘 다 죽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놈을 살려 둬야 합니까?"

주형이 가득 찬 술잔의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며 소리 질렀다.

"내 말 오해하지 마. 그 새끼가 불쌍해서 죽이면 안 된다는 게 아냐. 곽태성을 죽이면 너도 똑같은 살인자가 되는데 그게 말이 돼? 네 말대로 복수를 한다면 너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냐? 제수씨와 이제 손이 한창 가는 애들은 어떻게 하고? 그놈을 정말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겠지만 참아야 해. 법이 있잖아. 그놈은 아마 살아서 교도소 밖으로 나가기 힘들 거야. 국가의 법을 믿고 참아보자."

성균이 술까지 취해 감정조절 못하는 주형을 위로했다.

"그래요? 만약 형님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해 보세요."

"......"

주형의 질문에 성균이 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빨리 말해 보시라니까요?"

주형이 주먹으로 식탁을 꽝꽝 내리쳤다. 성균이 위로라고 하는 말들은 오히려 주형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대답할게. 나는 죽여버린다. 더 고통스럽고 더 잔혹하게 죽여 버린다. 됐냐? 됐어?"

대답을 끝낸 성균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형도 죽여버린다고 하면서 저는 왜 못하게 하세요."

"나는 나고, 너는 너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한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해 보이지만 어쩌겠냐. 그렇다고 살인을 할 수는 없잖아. 나도 말로는 죽인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겠지."

"엉~엉~엉~"

주형이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변 사람들이 성균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주형아, 네 마음 다 알아. 힘들지만 조금만 참아보자. 그래도 범인이 잡혔으니 다행이지 않냐.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법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남은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참자."

"그랬으면 좋겠네요. 형님 말씀대로 정말 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형이 형이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네요. 저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요. 범죄 가해자는 감정에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으면서 교도소에서 잘 지내고, 모든 걸 잃어버린 피해자들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범죄 당한 게 죄인가요? 어째서 피해자들이 더 고통을 받아야 하냐구요? 법이 죗값 치러 준다고요?. 형님도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잖아요. 담장 밖으로 나가지만 못하지, 그들이 피해자만큼의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진짜 아니잖아요. 수형 생활 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수용자를 몇이나 봤습니까? 형님이 저보다 잘 아시잖아요. 이건 아니잖아요.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엉엉엉 "

"......"

주형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한 맺힌 말들을 성균에게 퍼붇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성균이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보였다. 성균은 자신이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 대답 하지 못했다. 소리 지르며 두 손으로 눈물 흐르는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주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흐느끼고 난 주형은 어느 정도 감정 조절이 됐는지 눈이 풀린 채 테이블 위에 비워진 소주잔만 바라봤다.

"미안하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구나. 아무리 네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백 프로 다 알 수는 없겠지. 세상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다. 학교 다닐 때 잠 못 자고 공부해도 어른들이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생도 함께 고달파지는 것 같아. 그래도 어쩌겠냐. 아까 말한 데로 너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잖아. 조금만 참아보자"

둘은 마지막 남은 잔에 든 소주를 쓰라린 인생 비워내듯 입속으로 비워 버리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주형은 식구들을 찾았다. 아이들은 방에서 잠들어 있고 미아는 아이들 챙기느라 밥도 못 먹었는지 주방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한두 번 보는 모습이 아니어서 무덤덤했다.

습관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시선은 TV로 향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신 술 때문인지 아니면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빙빙 돌았다. 눈을 감자 술자리에서 김성균 주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1800번 곽태성이 살인범이야'

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범인이 자신의 주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수용동에 있을 거라고는 더욱 그랬다. 안쓰러워하며 챙겨 주었던 수용자가 은혜의 살인자라니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형의 유서를 읽으며 다짐했던 게 떠올랐다.

'범인이 잡히면 갈가리 찢어 죽여 잔혹한 복수를 할 거야'

그 범인이 잡힌 거나 다름없었다. 재판에서 유죄 확정만 받지 않았지 은혜 몸에서 나왔던 동일한 DNA를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확실했다. 복수해야 하는데 자신만 믿고 살아가는 식구들을 보니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김성균 주임 말대로 만약 범인에게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교도소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남은 가족들이 더 걱정이 됐다.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복수 후 자살을 한다 해도 어쨌든 아이들과 미아는 가장이 없는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할게 뻔했다.

그러면서도 '복수를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스마트 폰을 열고 '살인, 사람 죽이는 법'을 검색했다. 다양한 글들이 떴다. 몇 개 읽어 봤지만 황당한 이야기뿐이었다. 한참을 검색했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머리만 더 심란해졌다. 당장 내일 출근하면 곽태성을 봐야 하는데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고 심장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 발버둥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했다.

'면담하면서 칼로 찔러 버릴까 그게 힘들면 염산을 얼굴에 부어 버릴까. 아니면 야간 취침시간에 조용히 들어가 목을 조를까. 휴대하고 다니는 자살방지용 칼로 잠들어 있을 때 눈알을 파 버릴까. 그래 앞을 못 보면 죽는 거만큼 사는 것도 힘들 거야. 거기다 성기도 잘라 버리자 앞으로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오지 않고 더욱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삐삐삐삐~'

주형은 매일 같은 시각에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지만 잠이 들었고 깨어나자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순간 어제 김성균 주임과 나눈 대화가 꿈같았다. 그 일들이 사실인지 궁금했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알람을 해제한 스마트폰을 열었다. 최신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퇴근하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성균과 통화했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은혜의 살인범이 곽태성이라는 것은 꿈이 아니었다. 출근할 생각을 하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출근 준비를 마친 주형은 미아 모르게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를 열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식칼을 뽑아 들었다. 번쩍거리는 칼날에 주형의 얼굴이 비쳤다. 얼굴은 차가운 칼날보다 더 차가웠다. 수건으로 칼을 감싼 후 가방에 넣고 조용히 회사로 향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교도소에 도착했다. 수용동으로 들어가기 위해 회색 철문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철문은 무거워 보였지만 가볍게 열렸다. 수없이 다녔지만 철문이 이렇게 빨리 열린다는 걸 주형은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만큼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사동 앞에 다다랐다. 길게 뻗은 사동 복도가 블랙홀처럼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은혜를 죽인 살인범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벽에 손을 짚고 간신히 담당실에 도착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주형을 야간 근무자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부장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불편하세요?"

"괜찮아요. 새벽에 잠을 설쳤더니 그런 거 같아요. 야간 근무 중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2300번 박현이 입실 거부 했는데 잘 설득시켜 해결했습니다. 그거 말고는 조용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퇴근하세요."

"야간 근무 한 저보다 부장님이 먼저 퇴근해야 할거 같은데요. 정말 괜찮으세요?"

"진짜 괜찮아요. 빨리 퇴근하세요"

"그... 그럴게요"

주형은 아프다고 걱정해 주는 근무자가 고맙기보다는 귀찮았다. 빨리 인계하고 사라져 버렸으면 했는데 자꾸 말을 걸어오자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와 냉랭하게 인수인계 하고 의자에 앉았다. 들고 있는 가방은 책상 밑에 내려놨다. 안에는 출근 전에 챙긴 칼이 들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김성균 주임에게 들었던 'DNA가 일치한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담당실 벽에 붙어있는 현황판에서 1800번 곽태성을 확인했다. 10번 방에 있었다. 자살한 형이 잡혀서 법의 심판받기를 그토록 바랬던 살인자였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밝혀졌다면 형이 자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자신도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범인이었다. 이제 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불러서 따져야 할지, 가방 안에든 칼을 사용해야 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순간 화가 나고, 가슴속에서 짜증과 분노가 올라왔다. 갑자기 10번 방의 인터폰을 눌렀다.

[1800번 곽태성!]

[네. 부장님]

[다... 담당실로 나와]

[알겠습니다.]

감정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곽태성을 불렀다. 몇 분 지나자 담당실 문을 두드리며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곽태성은 평상시처럼 웃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주형이 살인을 저지른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

주형은 아무 말 없었다. 곽태성이 자신 앞에 앉아 있지만 외면한 체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시간이 흐르자 곽태성이 한 번 더 물었다.

"부장님, 왜 부르셨어요?"

"휴~~~"

주형이 한 숨을 몰아쉈다.

"말씀하십쇼"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다"

짧은 말 한마디에 담당실의 묵직한 침묵이 깨졌다.

"무슨 일인데요?"

주형의 진지한 모습에 곽태성이 조용히 물었다.

"얼마 전에 DNA채취했지?"

"CRPT(기동순찰팀) 직원분이 와서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고 있어?"

"결과요?"

"그래. 결과."

"잘 모르겠는데요"

곽태성의 목소리가 그제야 떨려왔다. 자신을 잘 대해줬던 주형이라 편하게 대하던 그의 얼굴이 DNA라는 말이 나오자 굳어졌다.

"추가건 있냐?"

"추가건이요? 다른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 뭘로 들어왔어?"

"절도로 들어왔는데요"

"그게 다야?"

"네."

곽태성은 긴장된 얼굴 표정과 다르게 목소리는 주눅 들어 있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한 그에게서 잔혹한 살인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살인을 했다고 하던데?"

주형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곽태성의 한쪽발이 덜덜 떨리며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 미세하게 작은 담당실에 퍼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살인이라뇨?"

곽태성이 당황스럽다는 듯 답했다.

"작년 이맘때 여고생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 있지? TV에도 나오고 했으니까"

"아뇨. 처음 듣는데요"

"처음 듣는다고?"

"네."

주형이 곽태성을 쳐다봤다. 눈빛이 활활 불타올랐고, 긴장해서 잡힌 눈가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곽태성은 사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주형도 DNA가 동일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곽태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목격한 것에 의한 증거가 아닌 과학적 검증에 의한 직접 증거였다. 이 말은 곽태성이 가증스럽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형은 당황스러웠다. 일반적인 사람은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뉘우치듯, 명확한 증거가 나온 상황에서 곽태성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 자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교도소 출입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겼던 곽태성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 아니 악마였다. 자신이 곽태성을 데리고 있으면서 일처리 해줄 때마다 밝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그였고, 엄마에 관해 면담을 할 때는 눈물까지 흘렸던 그였다. 그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닌 악마의 눈물이라는 걸 이제야 할게 되었다. 곽태성의 실체에 대해 할게 된 주형은 어이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만 덜덜 떨려왔다.

"......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변사체에서 나온 DNA와 너의 DNA가 동일하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걸까?"

"뭐라구요?"

"변사체에서 정액이 나왔고, 그 정액에서 나온 DNA가 기동순찰팀이 채취해 간 네 DNA 같다고! 그 말은 네가 여고생과 성관계가 있었다는 말이잖아. 씨발새끼야!"

주형이 '여고생'이라는 단어에 폭발했다. 평소 하지 않던 욕이 튀어나왔다. 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하게 대처하려 했지만 처참하게 당했을 은혜가 떠올라 참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자 굳어진 턱의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

곽태성의 대답이 없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소리 지르는 성균을 쳐다봤다.

"너는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

"......"

곽태성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증거가 있으니까. 사실대로 얘기해"

"어떤 살인사건 말씀하시는 겁니까?"

흥분한 주형을 무시해 버리듯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물었다.

"하하하~"

어이없는지 주형이 웃었다.

"저는 진짜 모른다니까요"

"모른다고? 쓰레기 새끼. 일 년 전쯤 목안동 야산 인근에서 밤에 지나가는 여고생이 변사체로 발견 됐어, 하의는 벗겨진 채였지. 그날은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날이었고....."

곽태성이 살인 사건 자체를 모른다고 발뺌 하자, 주형은 떠올리기 싫은 끔찍했던 은혜의 일을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 앞에서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고,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졌다. 책상밑에 있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주형은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았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주형은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았다.

지퍼를 열고 안에 든 것을 빼내려는 순간 담당실 문이 열렸다.

"최태식이 서예도구와 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성균이 노크도 없이 들어오며 소리 질렀다.

"어~ 면담 중이었네. 곽태성하고..."

급하게 들어온 성균이 주형과 곽태성 둘이 있는 걸 보고 말을 흐렸다. 성균의 등장에 놀란 주형이 가방을 내려놨다. 얼굴은 해 질 녘 사라져 가는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반면 곽태성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담당실의 세 사람은 굳은 석고상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 없었다.

"이건 담당 부장님이 허락한 거라니까요!"

절뚝거리며 뒤따라오던 최태식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이 부장. 1004번 최태식 수용자가 서예공부를 하기 위해 도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사실이야?"

성균의 손에는 교도소에서 보기 힘든 묵과 벼루등 서예용품이 들려 있었다. 순찰 돌면서 최태식이 방 안에서 보관 중인걸 압수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로 최태식과 언쟁이 되었고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최태식은 자신의 말이 맞다며 성균을 뒤따르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사회복귀과에서 교정교화 차원에서 지급했습니다. 사무용 칼은 담당인 제가 보관하면서 근무자 앞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형이 형식적으로 설명했다.

"징역 참 좋다 좋아~"

사실을 확인한 성균은 어이없다는 듯 들고 있는 서예 도구를 최태식에게 건넸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관에서 지급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았으니까 가지고 들어 가세요. 본인에게만 허락된 물품이니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됩니다. 잘 관리하세요."

"네."

"방으로 들어가세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서인지 최태식이 더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고 물품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의 날카로움이 많이 사그라들었고 복통으로 고생해서 인지 얼굴이 헬슥해져 져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다르게 눈빛은 더 매서워 보였다.

"이 부장 면담하고 있는데 불편하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네. 조용히 순찰만 돌고 가려했는데 최태식이 자꾸 태클 걸잖아. 그만 철수할 테니 면담 마무리해."

"아닙니다. 다 끝났습니다. 제가 할 말이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형이 굳어진 표정으로 성균을 바라봤다.

"할 말? 알았어"

"곽태성 일단 알았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러시죠."

"앞으로 너는 영상녹화기기가 설치된 독거실에 수용될 거야. 13 방으로 짐 옮겨"

"제가 왜 독방으로 가야 합니까? 그것도 cctv가 설치된 곳으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했잖아. 너는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당연히 특별관리 해야 되지 않겠어?"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곽태성은 여전히 자신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곽태성! 징역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나중에 수사해 보면 알겠지만 혐의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 잔말 말고 부장님이 시키는 대로 방 옮겨"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외쳤다.

"알... 겠... 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성균의 목소리에 곽태성이 떱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일어섰다.

짐을 챙긴 곽태성은 독거실로 들어갔다. 팔을 뻗으면 완전히 펼쳐지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다. 위에는 동그란 cctv카메라가 달려있어 24시간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까지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씨발 좆같아서... 조용히 끝날 줄 알았는데... 그때 술에 취해 뒤처리를 제대로 못한 게 이제야 터질 줄이야. 일부러 징역까지 들어왔는데. 젠장, 재수 없으면 이 좆같은 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다니. 젠장~ 끝까지 오리발이다.'

담당실에서 주형과 면담할 때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순진해 보였던 얼굴이 양의 탈을 벗자 미친 늑대가 나타났다. 쳐져 있던 눈꼬리가 올라가고 앙당문 턱선이 차갑게 보였다. 숨겨져 있던 감정도 서서히 드러나자 목소리도 그전의 곽태성이 아니었다. 비굴하게 혼잣말하는 소리가 옆방까지 퍼졌다.

조용히 서예 붓을 잡고 있던 최태식이 벽에 붙어 곽태성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개새끼... 이 새끼는 나보다 더 한 새끼네. 나는 죄짓고 사실은 인정했는데 이 놈은 인정하지도 않고만... 하긴 너나 나나 인간이었으면 여기 독방에 들어와 있겠냐.' 최태식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가 재밌는지 비아냥 거리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 썅~ 또 시작이네. 부... 부장님...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배가 아픕니다.]

곽태성의 말을 들으며 실실 웃고 있던 최태식이 갑자기 배를 움켜 잡으며 인터폰으로 호출했다.

주형의 옆에 있던 성균이 최태식의 목소리를 먼저 들었다.

"최태식 아냐?"

"맞습니다."

"배 아프다고 하는데?"

"요즘 부쩍 복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의료과에 수시로 다닙니다."

곽태성과의 면담으로 흥분해 있는 주형이지만 자신은 일을 해야 하는 교도관이었다. 종이 울리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용자가 누르는 인터폰이 울리면 긴장되었다. 확인 후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았지만 인터폰 벨 소리 몇 초의 순간은 담당 근무자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회색의 벽과 쇠창살로 꽉 막힌 사동의 근무자들은 감방이라는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최태식 씨 또 배 아파요?]

[네... 부... 부장님... 의료과에서 진통제 좀 먹어야겠습니다.]

[의료과에 전화해서 전처방으로 약 달아 달라고 할 테니 일단 참고 있어요. 외부 진료도 신청해 놀게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최태식의 목소리는 언제 앙칼졌냐는 듯 인터폰에서 힘없이 사라졌다.

주형의 마음을 알고 있는 성균은 사각으로 둘러싸인 작은 성냥갑 같은 곳에서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 그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고, 일반 사람도 아닌 인간쓰레기 같은 최태식의 약 심부름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가슴속이 달아올랐다.

"개새끼 근무자 피곤하게 하네. 저 새끼는 왜 아프다고 지랄인 거야?"

성균이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아프다는데 어떡하겠습니까. 해주는 수밖에요"

주형의 목소리는 곽태성에게 모든 기운을 쏟아 버린 듯 기운이 없었다.

"가방은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형의 무릎 위에 올려진 가방을 보며 성균이 물었다. 얼핏 보니 칼손잡이가 보였다. 당황한 주형의 모습에 의문이 갔다.

"곽태성 면담했나 봐?"

"......"

주형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사동 순찰이 남아서 가볼게, 고생해."

"형님. 잠깐만요..."

더 물어봤자 답이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하자 주형이 성균을 불렀다.

"할 말이라도 있어?"

"곽태성을 제가 죽여 버릴 것 같아요"

말을 꺼내는 주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휴~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단 참자, 감정적으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잖아. 보안과장님께 말해서 곽태성이 다른 방으로 전방 조치 해달라고 할게"

며칠 전 식당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형님이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형님 같으면 죽여버린다고. 저한테는 왜 그러지 못하게 하세요?"

"인마,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냐. 현실을 생각해야지. 너는 복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엄연한 살인이야! 살인이라고! 곽태성이 불쌍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야 이 멍청한 놈아. 순간적인 감정 조절 못해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많이 보잖아. 살인을 했더라도 사건 개요를 보면 가끔은 이해가 되는 사람도 있잖아. 그래도 똑같은 살인자고 죗값 받아. 네가 그렇게 될 수 있어. 냉정하게 생각하자. 너는 너 혼자 몸이 아니잖아. 설령 처자식이 없는 혼자 몸이라 해도 그건 안 되는 거야"

성균이 책상 위에 올려진 주형의 가방을 낚아챘다. 안에서 칼을 꺼냈다.

"알았으니까. 주세요"

"됐어. 이건 내가 가지고 갈 테니 다시 생각해 봐. 우리가 직장 생활하면서 수많은 범죄자를 보며 눈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 친부모를 살해하고, 어린애 강간 한 후 살해하고, 심지어 임산부를 강간하는 쓰레기들 까지 많잖아. 하지만 그놈들을 백 퍼센트 감정적으로 대하지 못해, 아무 일 없다는 듯 면담해 주고, 웃으면서 인사하면 받아줘야 하고. 그러다가도 뉴스에서 잔혹한 범죄자들 나오면 저런 새끼들은 죽여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또 사동 들어와서는 얼굴 보며 대해야 하잖아. 그게 교도관의 숙명이야.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네 심정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내가 더 죽여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우리는 교도관이라는 죄로 그 모든 걸 삭히고 가슴속에 담고 갈 수밖에 없는 거야"

"형님 말처럼 저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근무해 왔고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주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떨궜다. 성균은 작아진 주형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자신의 가슴도 터질 듯했지만 참아야 했다.


10번 방으로 짐을 옮긴 곽태성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작은 독방에서 서성거렸다. 긴장해서 물어뜯는 손톱에는 빨간 피가 흘렀다. 주형 앞에선 범인이 아닌 척 행동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좁은 감방 안에서 평생을 지낼 생각을 하니 머리가 백지상태가 되었다.

'몰라... 나는 절대 그 사건을 모르는 거야. 성관계는 사귀었다고 둘러 대야지. 그것 말고 다른 증거가 나온 게 없으니까. 시발 좆같네. 죽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사람 죽인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자신이 시멘트 벽으로 된 좁은 방 안에서 평생을 살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방안에서의 초조함이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옆으로 지나가던 최태식이 곽태성을 쳐다봤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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