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28.(효라빠 장편소설)
야간 자살 사건은 주형에게 크게 와닫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는 일까지 신경 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퇴근 무렵 담당실 전화벨이 울렸다.
[네. 3 동하 교사 이주형입니다. 말씀하세요.]
[이 부장. 나야]
[성균이 형님?]
[엉.]
[조금 있으면 퇴근인데 무슨 일이세요?]
[퇴근하고 집으로 가?]
[그렇죠. 왜 그러시는데요?]
[특별한 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을까?]
[저녁이요?]
둘은 형, 동생으로 지내자고 했지만 밖에서 업무 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 성균이 퇴근 후 밥을 먹자고 하자 다소 의아했다. 안 좋은 일이 있는 뒤로 사람들과 모임을 하지 않는 주형이라 성균의 밥 먹자는 말이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자네한테 할 말도 있어서 그러니 시간 좀 내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주형은 거절할까 하다 할 말이 있다는 성균의 말에 그러자고 답했다. 그들은 회사 근처 고기 집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 고생이 많지?"
"그냥 그렇죠."
단 둘이는 처음이라 말에서 어색함이 묻어났다. 수저를 놓는 등 자리 정리를 끝내자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이 먹기 좋게 익었다.
"출출할 텐데 일단 고기 좀 먹어"
"형님도 드세요"
"소주도 한 잔 해야지?"
"그러시죠"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걸쳤다.
"갑자기 왜 보자고 하셨어요?"
주형이 성균을 쳐다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하나..."
"뭐가요?"
성균이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자네가 담당하는 사동에 1800번 곽태성이라고 있잖아"
"네."
"그놈 생활 잘해?"
"그런대로 조용히 잘 지내는데요."
"그래."
"뭐 있습니까?"
"......"
주형의 반문에 성균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쓰디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캬~ 쓰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쓰다'는 말에 많은 의미가 묻어 있는 듯했다. 범죄자들을 매일 대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을 말하는 거 같았다. 맨 정신으로 말하기 힘들었는지 성균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연거푸 몇 잔의 소주를 더 마셨다.
"빈 속에 들이부으니 취하네. 내가 하는 말 듣고 너무 충격받지 마. 어쩌면 이게 우리 교도관의 숙명일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씀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세요?"
"말 돌려봐야 답답하기만 할 테니 있는 그대로 말할게"
취기가 오르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성균이 주형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꺼냈다.
"곽태성이 있잖아?"
"네."
"그놈이 자네 조카를 살해한 살인범이야"
'철그랑~'
주형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곽태성이가 뭐라고요?"
"그놈이 살인을 저질렀어..."
"사실이에요?"
주형이 다시 물었다.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이 굴러 다른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네 조카 시신에서 DNA가 발견 됐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했지? 아마 한창 수사중일 때 곽태성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얼마 전 DNA채취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DNA를 채취해 우리가 검찰청에 보내고 있잖아, 조카 시신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DNA가 발견 됐어. 그게 곽태성이야. 그 정도면 거의 범인이나 다름없지"
'쾅!'
말을 듣고 있던 성균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으아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변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주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으아아~"
"주형아 일단 진정하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조금만 진정하자"
"형님~ 이게 진정할 일입니까. 내가 그렇게 잘 챙겨 줬던 놈이 우리 은혜를 죽인 살인범이고, 그놈이 내 사동에서 버젓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게 진정할 일이냐고요?"
주형이 흥분해서 성균을 쳐다봤다. 그의 빨갛게 변해 버린 눈에는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형도 네 마음 이해해. 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중심 잡아야 하지 않겠냐?"
"하하하. 중심이라... 중심 좋죠. 하하하"
소리 지르던 성균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형님. 사는 게 왜 이렇게 좆같습니까. 왜 이렇게 좇같냐고요?"
웃음을 멈추고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안은 눈빛으로 성균을 쳐다봤다.
"그러게 인생 참 더럽다."
"형님. 그놈은 제가 죽일 겁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왜요? 죽이면 안 됩니까? 그놈은 우리 은혜를 죽였습니다. 그것도 끔찍하게. 아니죠 은혜만 죽인 게 아니라 우리 형도 죽였습니다. 은혜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형이 자살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사람 두 명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놈을 살려 둬야 합니까?"
주형이 가득 찬 술잔의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며 소리 질렀다.
"내 말 오해하지 마. 그 새끼가 불쌍해서 죽이면 안 된다는 게 아냐. 곽태성을 죽이면 너도 똑같은 살인자가 되는데 그게 말이 돼? 네 말대로 복수를 한다면 너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냐? 제수씨와 이제 손이 한창 가는 애들은 어떻게 하냐고? 그놈을 정말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겠지만 참아야 해. 법이 있잖아. 그놈은 아마 살아서 교도소 밖으로 나가기 힘들 거야. 국가의 법을 믿고 참아보자."
성균이 술까지 취해 더 흥분한 주형을 위로했다.
"그래요? 만약 형님이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해 보세요."
"......"
주형의 질문에 성균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실 거냐구요? 빨리 대답해 보시라니까요?"
주형이 주먹으로 식탁을 꽝꽝 내리쳤다. 성균이 위로라고 하는 말들은 오히려 주형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 대답할게. 나는 죽여버린다. 더 고통스럽고 잔혹하게 죽여 버린다. 됐냐? 됐어?"
대답을 끝낸 성균도 쓰디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형도 죽여버린다고 하면서 저는 왜 못하게 하세요."
"나는 나고, 너는 너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한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거 같지만 어쩌겠냐. 그렇다고 살인을 할 수는 없잖아. 나도 말로는 죽인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겠지."
"엉~엉~엉~"
주형이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변 사람들이 성균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주형아, 네 마음 다 알아. 힘들지만 조금만 참아보자. 그래도 범인이 잡혔으니 다행이지 않냐.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법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남은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참자."
"그랬으면 좋겠네요. 형님 말씀대로 정말 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형이 형이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이제 알 거 같네요. 저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요. 범죄 가해자는 감정에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으면서 교도소에서 잘 지내고, 모든 걸 잃어버린 피해자들은 왜 이런 힘든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범죄 피해를 당하게 죄인가요? 어째서 피해자들이 더 고통을 받아야 하냐구요? 법이 죗값을 치러 준다고요?. 형님도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잖아요. 담장 밖으로 나가지만 못하지 그들이 피해자만큼의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진짜 아니잖아요. 수형 생활 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수용자들을 몇이나 봤습니까? 형님이 저보다 잘 아시잖아요. 이건 아니잖아요.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엉엉엉 "
"......"
주형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한 맺힌 말들을 성균에게 퍼붇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성균이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보였다. 성균은 자신이 가해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소리 지르고,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주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흐느끼고 난 주형은 어느 정도 감정 조절이 됐는지 눈이 풀린 채 테이블 위에 비워진 소주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구나. 아무리 네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백 프로 다 알 수는 없겠지. 세상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네. 학교 다닐 때 잠 못 자고 공부해도 어른들이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생도 함께 고달파지는 거 같아. 그래도 어쩌겠냐. 아까 말한 데로 너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잖아. 조금만 참아보자"
"네..."
둘은 마지막 남은 잔의 소주를 쓰디쓴 인생을 비워내듯 입속으로 털어 버리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주형은 가족들을 찾았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잠들어 있고 와이프는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안방 침대에서 웅크리며 잠이 들어 있었다. 한두 번 보는 모습이 아니어서 무덤덤했다.
습관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시선은 TV로 향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신 술 때문인지 아니면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빙빙 돌았다. 눈을 감자 술자리에서 김성균 주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1800번 곽태성이 살인범이야'
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범인이 자신의 주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자신이 관리하는 교도소 수용동에 있을 거라고는 더욱 그랬다. 안쓰러워하며 챙겨 주었던 수용자가 은혜의 살인자라니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형의 유서를 읽으며 다짐했던 게 떠올랐다.
'범인이 잡히면 갈가리 찢어 죽여 잔혹한 복수를 할 거야'
그 범인이 잡힌 거나 다름없었다. 재판에서 유죄 확정만 받지 않았지 은혜의 몸에서 나왔던 동일한 DNA를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확실했다. 이제 복수를 해야 하는데 방안에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보니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김성균 주임 말대로 만약 자신이 범인에게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 남은 가족들이 더 걱정이 됐다.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복수 후 자살을 한다 해도 어쨌든 아이들과 와이프는 가장이 없는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할게 뻔히 보였다.
그러면서도 '복수를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을 열고 '살인, 사람 죽이는 법'을 검색했다. 다양한 글들이 떴다. 몇 개 읽어 봤지만 황당한 이야기뿐이었다. 한참을 검색했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머리만 더 심란해졌다. 당장 내일 출근하면 곽태성을 봐야 하는데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고 심장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 발버둥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했다.
'면담하면서 칼로 찔러 버릴까 그게 힘들면 염산을 얼굴에 부어 버릴까. 아니면 야간 취침시간에 조용히 들어가 목을 조를까. 휴대하고 다니는 자살방지용 칼로 잠들어 있을 때 눈알을 파 버릴까. 그래 앞을 못 보면 죽는 거만큼 사는 것도 힘들 거야. 거기다 성기도 잘라 버리자 앞으로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오지 않고 더욱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삐삐삐삐~'
주형은 매일 같은 시각에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지만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고 깨어나자 머리는 멍했다. 순간 어제 김성균 주임과 나눈 대화와 수많은 생각들이 꿈같았다. 그 일들이 사실인지 궁금했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알람을 해제한 스마트폰을 열었다. 최신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퇴근하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성균과 통화했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은혜의 살인범이 곽태성이라는 것은 꿈이 아니었다. 출근해 그를 만날 생각을 하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