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진행과 다짐.
우울증의 특징이 신체적/정신적 자학이지만 그 근거는 한 없이 낮아진 자존감 때문이다. 뭐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의미가 있다 생각해서 나를 책망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왜 했을까, 이 손 까닥 거림은 어떤 의미일까, 어깨 으쓱은? 내가 좋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다가온 걸까.”
라는 생각을 근 10년은 해 온 거 같다. 아니, 10대 때부터 우울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학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가면성 우울증이였다. 남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20대가 되어서 대학을 다녔다. 그래도 우울증은 심해졌지만 무엇에 집중하면 감정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안정이 되어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2학년1학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거나 놀고 2학년 2학기때부터 제대로 공부를 했다. 정말 2년 반동안 대학교 공부를 충실히했다. 단지….. 교양과목을 전공과목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내가 체력이 썩 좋지만은 않아서. 그래도 입학을 과수석으로 해서 졸업도 과수석으로 했다. 그래서 취업을 잘 했냐….. 토익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학과 공부 외의 공부를 하기에 시간이나 체력이 도와주지 못했다. 사회에 나와보니 토익도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20대 23세에 사회에 나와 좀 방황을 했다. 20년을 학교 울타리에서 지내다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서 알아서 하라고 던져지니 정말 목표를 잃었다. 학교 다닐 땐 ‘입학’과 ‘졸업’이라는 과업이 있었다. 그 속에서 점수 만드느냐고 고군분투했다. 그런 학교울타리에서 벗어나 그렇게 갈망했던 자유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내가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후, 어디로 내 인생방향을 잡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때 우울증도 좀 더 심해졌지만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거기에 5살부터 길을 가다가 기절을 했다. 그래서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누워 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기절을 한다는 걸 몰랐다가 요양 시기인 30대에 알 게 되셨다. 일하다 석상 되듯이 우뚝 서서 기절을 2분, 5분 했다가 깨서 바로 과정을 이어서 하는 모습을 목격해서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당근 채썰다가 기절로 석상이 된 거였다.
엄마가 당근 썰다 왜 눈감고 자냐며 툭 쳐서 깼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채를 썰었다. 즉, 난 기절한 걸 기억을 못했다. 엄마가 너무 놀란 표정이셨다. 그 다음부터 식칼을 잡는 건 다시 엄마가 하게 되었다. 또 내가 손목 스냅을 정교하게 활용을 못해서 참…. 투박하게 썬다. 그래서 2019년부터 요리를 잘 한다고 주방을 엄마가 내 주셨는데 이 사건 이후 다시 엄마가 와서 같이 요리를 하게 되었다. 칼 쓰는 건 엄마가 도맡으셨다.
한 번 기절한 거 갖고 그러냐 하겠지만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작년(2023년)이 좀 심해졌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쩌다 석상 되어 가만히 서 있는 적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부모님은 근심이 날로 커져갔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래서 주는 약을 잘 먹는 거 외엔….. 그래도 기절이 석상 되는 게 다행이다. 석상 되려 할 때 나의 현상은 눈 앞이 하얗게 된다. 다른 눈 앞에 검게 되면 몸 쓰러지면서 제대로 기절을 하는 거다. 이 땐 숨만 쉬지 완전한 송장이 되는 거다. 후자 기절은 30대 초 치료 초반에 잦았다가 지금은 없어졌다. 이제 하얗게 되어 석상 되는 증상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언제 석상 되어 기절할 지 모른다. 석상…. 그냥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서 아무런 미동 없이 우뚝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거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석상 상태에서 벗어나면 난 그 다음의 과정으로 이어 가서 더더욱 주변인들이 놀란다. 내가 기절한 걸 기억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근데 ….. 보통 사람들은 기절했다는 걸 스스로 기억하나? 나는 잘 모르겠다.
음…. 내 질환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리는 글이 되는 거 같다. 근데 …. 난 …. 이겨냈다고~ 기절은 내가 산부인과적으로 생리혈을 심하게 해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근데 지금 산부인과적으로 여성호르몬 과다로 인한 거라고 해서 조절 하는 중에도 기절을 좀 하는 거 보면 철분 부족도 아닌 거 같다.
이런 질환을 앓으면서 정말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 같은 이는 ….. 없어져도 ….. 세상 사람들이 …… 모를게 뻔한데…..’
라는 우울한 생각을 참 많이 했지만 내 지나온 세월이 아깝고 심한 무기력증에도 빠져서 자살 계획을 옮기지 않았다. 아니, 옮기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사실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내 지난 과거가 사라지는 게 싫었다. 참 열심히 살아 왔는데 여기서 죽으면 말짱 도로묵이니까.
거기에 2010년 치료를 시작할 때 나는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살리라. 완치 못해도 더 건강해지리라.”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켰다. 지금 14년째 지금 말투도 평생 듣지 못했던 감성적인 말투로 바뀌였다. 내 말투가 참…. 차갑고 딱딱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참 부드럽고 감성적이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운동도 참 열심히 하고, 유튜브제작도 영상기록용으로 만들면서 다른 이들의 영상을 분석하면서 말투를 고치는 데 일조했다. 정말 14년 전에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날 만났다. 지금 과거의 내 자신에게 고맙고 대견스럽다. 그리고 많이 힘들었는데 다 이겨서 예전의 나, 그나마 심하지 않았던 10대/20대 초로 돌아간다는 데 더 나은 살람이 되었다. 정말 눈물 난다. 난 그래서 과거의 내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없이 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