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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Feb 03. 2019

습관적 아는 척

주머니탐구생활#11. 그거

“아 그거요?”
입안에 씹다 만 밥알이 있든, 머릿속으로 언제일지 모를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든, 나도 모르게 “아 그거요?” 하는 말이 나온다. ‘그거’에 대해 듣는 동안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가끔 손뼉도 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그거’에 대해 검색한다. 지난 검색어 목록에는 낯선 이름과 지명들, 다시 말해 ‘그거’들이 참 많다.


잘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아는 척하는 건 습관이다.
내 대학 동기들은 적어도 네다섯 살은 더 나이가 많았다. 다른 학교나 직장에 다니다가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많이 안다’는 생각에 알아도 모르는 척했다. 섣불리 말했다가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들킬 것 같았다. 말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 부족한 건 비단 지이 아니라 유대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며 유독 크게 웃었고, 나는 관심 없는 척 부러 다른 곳을 봤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누군가 “그 영화 봤어?” 하고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술잔만 만지작거리던 찰나 익숙한 이름이 들려서 반가웠다. 나는 그 영화가 왜 좋았는지 또 그 감독의 다른 영화는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잠시 말을 멈췄을 때, 누군가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반박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취향이 같네." 나는 얼떨떨해서 웃었다. 그리고 같이 웃었다.


같은 관심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게 한결 편안해졌다. 적어도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할 이유는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아는 건 크게, 잘 모르는 건 에둘러  이야기했다. “아, 그거?” “그렇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든 유대감은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아는 만큼 웃었고, 아는 척하는 만큼 왜 웃는지 몰랐다.

같이 웃을 수는 있었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사람들한테 나는 어느 정도 필요한 사람,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 딱 그 정도였을지 모른다.


솔직히 모른다고 디 하는 게 어려운가 하면, 그렇다. 

아는 척으로 진짜 알게 되는 것도, 누군가와 진짜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순간순간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에 가깝다. 모른다고 말하면 모자란 사람이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될까봐, 그리고 누군가와 다른 사람이 될까봐 '그거'가 쌓인다.


‘듣는 편에 설 때가 많습니다.’
몇 년째 이력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세상을 넓혀간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보다 이롭다는 생각, 아니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입바른 말이다. 그러나 이력서와 달리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나.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나에 대한 인상이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 

좋은 이야기에는 과장되게 웃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에는 부러 눈썹을 올리며 놀란다. 사실은 반응이 앞선다. 언제 웃고 웃음을 거둬야 좋을지를 생각한다. 같이 웃으려고 한 일인데 돌아보면 어떤 이야기에 같이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향해 던진 습적적 아는 척은 다음 질문으로 나에게 돌아오고, 나는 더 큰 몸짓과 목소리로 그 질문을 받아친다.


점점 커지는 내 몸짓과 목소리는 어디에 닿을까. 아니면 내 무게에 내가 눌려서 납작해지려나.

의문이 불어나고, 날이 밝으면 습관적으로 이렇게 던진다.


아,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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