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글래이저, <언더 더 스킨>, 2013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심보선이 시에서 청춘을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청춘>)라고 정의한 것에 대해, 그걸 말 그대로 ‘마조히스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울은 내가 아니니까.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닌 이상, 힘껏 뱉은 타액이 내 얼굴을 향하기란 불가능하다. 일그러지는 건 내 표정이 아니라, 거울 표면의 점액질을 통과하며 굴절된 빛일 뿐이다. 하지만 ‘크게 웃’는 그 쾌감은 어디서 오는가. 단지 거울이라는 물질에서일리는 없다. 나의 침이 거울에 반사된 내 얼굴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쾌감은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춘은 위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위악이다. 청춘은 자기를 학대하고 부정하지만(제 얼굴에 침을 뱉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벗어나 있다.(거울에 비친 제 이미지일 뿐이다.)
이건 모두 거울의 오묘함 때문이다. 거울은 분명 거울 앞의 존재를 비추지만, 결코 그 이미지가 곧 존재는 아니니까. 거울 앞에 선 존재의 불안도 마찬가지. 내 눈 앞에 있는 모습이 정말 나인가. 도대체 그걸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같은 맥락에서 <언더 더 스킨>은 사실상 거울과 시선에 대한 영화다.
1. 첫 번째 거울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외계에서 스코틀랜드로 온 로라(스칼렛 요한슨)가 사람들을 유혹해서 액체 속에 가둔 뒤 그들의 피부만 따로 외계로 보내는 작업이 반복되는 전반부와, 돌연 그 작업을 멈추고 막연히 길을 떠도는 후반부로. 중요한 건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는 계기들이다. 두 부분 사이에는 두 개의 거울이 연달아 나온다.
이상하지만 첫 번째 거울은 거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빛을 반사해 앞에 있는 대상이 맺히는 물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첫 번째 거울은 전반부의 마지막에 로라가 끌어들인 남자다.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그 남자는 로라가 유일하게 놓아주는 인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를 통해 로라가 자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밤에, 그것도 얼굴을 가린 채 장보러 가는 그에게 로라는 자기의 피부를 만져보라고 한다. 직접 그의 손을 잡아 자기의 피부에 갖다 댄다. 말하자면 로라는 그를 통해서 자기의 피부를 느낀다. 엄밀히 말하면 남자의 피부를 느낌으로써, 남자가 느끼는 자기의 피부를 대리-감각한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로라가 최초로 경험하는 거울인 셈이다. 시각이 아닌 촉각의 거울.
그건 로라가 자기를 둘러싼 표피, 즉 피부를 처음으로 자각하는 순간이다. 시커멓고 마치 ‘뼈밖에’ 없는 형체가 사실상 로라의 진짜 (외계인으로서) 모습(이후 외계인으로서의 로라의 모습을 ‘본모습’으로 칭하겠준다.)이지만, 그 남자라는 거울을 만난 이후 피부 속(under the skin) 진짜 로라는 피부라는 타자와 일체감을 느낀다.
이와 관련해서 로라가 그 남자와 만나는 씬 직전 쇼트는 의미심장하다. 전반부에는 로라의 시점쇼트PoV가 꽤 많이 삽입되어있다. 대부분 그녀가 차를 모는 와중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비춘다. 그러다 로라가 보았던 수많은 사람의 얼굴들이 몽환적이게 포개지고, 그 위에 로라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쇼트가 나온다. 그건 그 남자를 만나기 전에 지구인들과 같은 피부를 겉에 두른 자기의 모습과 지구인들 사이에서 로라에게 어떤 동화의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아니었을까.
어쨌든 로라는 그 남자를 살려준다. 재밌게도 그 와중에 처음으로 외계인 로라의 본 모습, 즉 거무튀튀한 형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본모습 위에 피부를 둘러싼 로라의 모습이 디졸브 컷 된다. 이는 로라가 본격적으로 실체(본모습)와 이미지(피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간극은 단순하지 않다. 이를테면 그건 내가 너와 같지 않다는 인식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로라의 문제는 훨씬 근본적이며, 도착적이다.
로라에게 본모습와 피부는 분명 다르지만, (최소한 지구에서) 로라는 피부 없이 살 수 없다. 흔한 철학적 논쟁. 니체를 끌어와서 미안하지만, 그에 따르면 ‘가면이 곧 본질’이다. 로라는 바로 이 명제를 적확하게 증명하는 존재다. 로라에겐 가면, 즉 피부가 전부다. 그게 없다면 그녀의 본모습도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녀에게 본질과 현상은 도착적으로 뒤섞인다. 로라가 피부와 본모습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피부에 자기를 동일시하는 아이러니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2. 두 번째 거울, 그리고
두 번째 거울은 우리가 흔히 아는 거울이다. 촉각적 거울이었던 그 남자와의 만남 이후 로라는 여러 번 거울 앞에 선 자기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나르키소스처럼 그녀는 도발적인 얼굴과 풍만한 몸매에 매혹된 것 마냥 거울을 (눈으로) 핥는다. 이런 씬들도 위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위에서는 피부와 본모습의 촉각적 동화였다면, 이번엔 시각적 동화라는 점이 다르달까?
촉각과 시각. 연이어 두 거울을 마주한 로라는 돌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 뒤, 한적한 도로 한복판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사방은 안개로 자욱하고,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전반부에서는 로라가 인간의 외양, 즉 피부와 동화되는 과정을 거쳤다면, 후반부에서 로라는 인간의 욕망을 좇기 시작한다. 식당에 앉아서 케이크를 주문하고, 자상한 남자와 섹스를 시도한다. 말하자면 식욕과 성욕을 ‘느껴’보려 한다. 하지만 번번이 결과는 실패다. 입에 집어넣었던 케이크는 ‘무조건 반사’인 마냥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침대 위에서 무르익은 분위기는 남자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과 함께 끝난다. 그녀에게 음부가 실재할리 없다.
3. (세 번째) 거울 아닌 거울
연이은 식욕과 성욕의 실패. 거기서 로라는 본모습과 피부의 괴리를 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그녀는 둘 사이의 일체감을 버리지 못한다. 섹스에 실패한 뒤 로라는 홀로 숲속에 들어간다. 등산객 쉼터에서 잠을 자던 로라는 누군가 자기를 만지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다. 영화의 전반부 로라가 남자를 유혹하고 서슴없이 옷을 벗어재끼는 씬들을 염두에 둔다면, 로라의 이러한 반응은 놀랍기 그지없다. 말하자면 욕망을 발현하는데 연이어 실패했지만, 로라는 오히려 점점 피부를 자로 인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쉼터에서 도망친 로라는, 그러나 결국 숲 한복판에서 그 남자에게 도로 잡힌다. 그녀는 스스로 섹스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그 와중에 로라의 피부가 찢어진다. 더 이상 본모습=피부가 불가능해지는 시점이다. 남자는 도망가고, 로라는 주저앉아 피부를 벗긴다. 시커먼 본모습의 로라는 지금껏 그녀가 걸쳐왔던 로라의 피부-얼굴을 마주한다. 마지막으로 로라가 마주하는 피부-얼굴은 세 번째 거울이자, 거울-아닌-거울이다. 피부-얼굴은 로라의 모습을 비치는 거울이(었)지만, 더 이상 로라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말하자면 거울로서 피부-얼굴의 형상은 박제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지금껏 자기라 믿어왔던 거울의 형상이 어디서든 같은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로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시 돌아온 남자가 등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일 때 까지. 그렇게 로라는 피부와 함께 타 재가 된다. 아니, 어쩌면 타는 건 피부뿐, 로라는 외계로 돌아갔을지도.
*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byulnight.tistory.com/293)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