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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말차라테 없이 살 수 없어

사랑했던 것들은 나를 떠나고

by 김타닥

가히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원래도 사랑해 마지않았지만,

대체당으로 칼로리까지 착해진 채 돌아왔다는 그것에 빠지지 않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작년엔 몰랐는데, 올해는 우유를 두유로 변경하면 고소한 말차맛이 배로 잘 느껴진다는 꿀팁마저 발견해 버렸다. 완벽해. 따듯해진 날씨에 옷이 얇아지고, 그러니 살을 좀 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마저 말차라테 위로 슈크림이 몽글몽글 녹아들면 사라지기까지 했다.


단종되기 전에 열심히 먹어야지.

별다방 없는 시골에 사는 나는 (그래 맞다. 놀랍도록 그런 시골이 존재한다.) 슈크림라테 출시와 동시에 단종 전에 먹어야 한다며 타 지역에 들를 일이 생길 때마다 약 두 달을 뻔질나게 별다방을 드나들었고, 이윽고 그것이 단종되자 내가 마법처럼 외운주문들은 갈 곳을 잃었다. 나는 크게 절망했다. 슈크림말차라테 아이스, 그란데사이즈로 주시고 우유는 두유로 변경해 주세요. 슈크림 많이 부탁드립니다. 이젠 외칠 수 없는 주문이다.


고작 좋아하는 카페 음료가 단종됐다는 사실로 슬픔 내지는 상실감을 느끼다니. (심지어 내년에 또 돌아올 예정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한철살이 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물복숭아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복숭아철이 되면 복숭아에만 몇십만 원을 태우기도 한다. 손가락이 탱탱 불고 들척지근한 복숭아냄새가 손에 배일 때까지, 이제 막 껍질을 깐 보송한 복숭아를 개수대 앞에 서서 우악스럽게 먹고 있으면(예쁘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 고가에 산다. 나는 아직 그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남부러울 게 없었다. 복숭아 철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산 복숭아의 멍든 부분이 갈색으로 물들어가면 나는 슈크림말차라테가 떠났을 때와 같은 아쉬운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나는 굳이 입에 머물다 사라지는, 이 참을 수없이 가벼운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슬픔을 느끼기를 반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영원하지 않기 마련이니까.


이를 깨닫게 해 준 사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에는 딸기가 있다. 딸기시즌이 되면 미친 사람처럼 생과부터 딸기케이크, 딸기스무디, 딸기찹쌀떡에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딸기를 섭렵하던 내가, 작년에 딸기를 입을 벌리면 딸기냄새가 날 만큼 물리도록 먹고 나서는 올해는 딸기를 그다지 열정적으로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심드렁해진 나를 보고 되려 놀라기까지 했다. 나는 스물일곱 해 동안 딸기를 사랑해 왔는데. 향후 칠십여 년 정도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사다두면 온 사무실에서 딸기 냄새가 날 정도로 질 좋은 싱싱한 딸기를 파는 트럭이 회사 앞에 도착하면, 달려가 한 박 스내지 두 박스는 사 오고 즐거워하곤 했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면 옆팀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딸기를 돌리고 나서도 내 것만 한 박스 추가로 슬쩍 사다 주실 만큼 온 동네가 다 알게 딸기를 좋아하는 나였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돼버린 것이다.


설레고 좋아하고 떠나갈까 마음 졸이는 시간들 마저 그리워질 줄이야. 그러니 마음 붙이고 살 것 찾기 쉽지 않은 이 세상에서 잠깐이라도 사랑한 것들을 찾는 건 소중한 일이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지 오늘도 마음먹으면서. 이러한 한철살이들이 또 생기고 사라지며 내 인생의 한편을 달콤하게 채워주길 바란다. 내년 슈크림라테 시즌엔 벤티사이즈로 먹을까. 그럼 배부른데, 뭐 이런 생각도 하고.


PS.

눈물 쪽 뺄 만큼 좋아했던 사람들이 지금 보면 썩 그렇지만도 않은 건 어째서일까. 그땐 정말 그 사람이 세상의 전부였는데! 왜인지 그걸 깨닫고 나면 딸기를 잃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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