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들 사랑해
자그마하고 예쁜 초코색 아기 푸들을 집에 데려 왔다.
부부가 되어 세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오더니 뭔가 큰 마음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이어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강아지 가족으로 할까?" 나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내가 평소 노래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초코색 푸들을 염두하고 그가 말한 것이다! 그 말을 하던 남편의 상기된 얼굴과 그의 얼굴 뒤로 비추던 주방 조명의 환상적인 노란빛이 아직도 내 마음에 생생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해 크리스마스, 녀석의 이름은 루돌프가 되었다.
돌프를 보는 하루하루가 사랑스러웠다. 돌프를 볼 수 없어 안타까운 수면 시간도 줄였다. 매일 저녁 6시 0분이면 회사를 뛰쳐나와 전속력으로 집을 향했다. 현관문을 열면 두 손 들고 반겨주는 강아지가 앙앙 거리는데 아기천사가 있다면 이놈이었다. 그렇게 매일 돌프로부터 행복과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다 문득 이 아름다운 감정을 돌프에게만 돌려주는 게, 우리끼리만 공유하는 게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무른 생각은 시간을 타고 흘러갔다.
해가 길어지던 주말 오후였다. 소파에 파묻혀 네이버 뉴스 기사를 둘러보다 강아지 학대, 유기와 관련한 헤드라인이 스쳤다. 나는 지금껏 그런 내용을 직면한 적이 없다.
처음으로 몸에 바늘을 대던 날이었다. 손가락을 네 바늘인가 꿰매기로 한 나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간호사 언니들이 온몸을 붙잡아주고 나서야 의사 선생님께서 실과 바늘을 휘감았던, 그런 경험이 있는 나였다. 딱 이 정도 수준의 담력인 나에게 강아지 학대 기사를 볼 재간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심장부터 벌렁거리고 눈물이 왈칵 앞설 테니.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을 외면하는 내가 걸렸다. 나를 보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강아지 학대와 유기는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한 이슈라,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건 물론 처음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아무리 그러지 않고 싶어도 회피, 외면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것 밖에는 없을까?' 그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돌프를 둘러싸고 돌프와 나, 남편 우리 세 가족이 주고받던 사랑이 발을 딛고 일어서 보려는 내 다리 근육에 힘을 보탰던 걸까. 주저하는 관성과는 달리 나는 기사 제목을 터치했고 사진을 제외한 텍스트를 전부 확인해 내려갔다. 기사에는 극악무도한 한 인간의 추태로 작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잔인함이 난무했다. 내가 알아차린 마음은 슬픔 그리고 분노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분노와 포근한 소파에 기대어 있는 내 몸 사이에서 나는 굉장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제대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외면하는 것 말고 어떤 길이 있을지.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을 예방하는 길과 처벌하는 길.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은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일. 나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로 하고 후자를 골랐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돌프에게 얻은 사랑을 이곳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유기견 보호소에 가게 되었다. 상상한 것보다 그 날의 유기견 보호소는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다소 안심이 됐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손길이 스쳐갔음이 훤히 보였다. 낯을 가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꽤나 어색해하는 나지만 그들과는 왠지 편안했다. 우리는 먼저 관리동 D구역을 갔다. 내가 켄넬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많은 강아지들이 내 눈을 쳐다보는데 집에서 상상해 본 그때의 감정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했다. 그렇지만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머 쟤는 복슬복슬 너무 귀엽게 생겼어”
보호소에는 흔히 말하는 시골의 '똥개'가 대부분이었는데 간혹 도시의 아파트에서 익숙히 볼 수 있는 강아지도 있었다. 그런 그들의 외모를 구분 짓고 있는 나를 자각하는 게 내가 보호소에 가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인간 때문에 생겨진 보호소라는 곳에 간 내가 외관에, 외모에 절로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 인간이란 그렇구나. 나의, 아마도 우리의 현실 같았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면 다음 선택의 보기를 다양하게 한다. 또 주체적인 선택권을 갖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유기견을 데려 올 형편이 된다면 보호소에서 제일 못생긴 아이를 데려와야지.' 그게 봉사 다음으로 이 보호소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같았다. 철저히 인기 순위 꼴찌의 외모였으면 좋겠고 그의 이름은 ‘미남이’라 짓고 싶다.
이미 생겨먹은 현실과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적당히 버무려 실천하는 중이다. 과도하게 애쓰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기억했으면 하는 작고도 큰 바람이 있는데 자신이 행복한 게 최우선이라는 거다. 그래야 오랫동안 바깥도 도울 수 있을 거다. 그게 나도 좋고 남도 좋은, 내가 매듭 지은 실천에 대한 생각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루돌프가 되어 그의 연약한 에너지를 건드려 줄 수 있을지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