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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Oct 16. 2017

여행의 비밀

태국 여행에서 마주한 일상의 아름다움에 관한 에세이

내가 여행할 때 타국의 멋진 관광지보다 낯선 땅에서의 ‘찰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지난여름 태국여행에서 만난 마을주민의 눈빛 때문이다. 그는 동네 이곳저곳을 사진기에 담는 나를 쳐다봤다. 커다란 사진기에 삼각대, 셀카봉까지 챙긴 내가 그에게 예사롭지 않아 보였겠지만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찰나 며칠 전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본 중국인 관광객이 떠올랐다. 그 관광객은 내가 자주 다니는 길거리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게 지극히 평범한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신기해 나는 그를 쳐다봤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도착한 여행지가 다른 이의 ‘일상’이라니. 허탈한 기분이 들지만 타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깨달았다. 이 평범한 사실은 내가 떠났던 모든 여행지. 그리고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보이지 않고, 맡을 수 없고, 들리지 않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수고를.






우리가 떠나는 모든 곳은 누군가의 터전이다. 반대로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상관없는 각자인 듯 보이나 사실은 잘 끼여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 할지언정 각자의 자리에서 익숙한 동작을 반복하는 일은 쉽게 사라지거나 흩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채운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큰 움직임을 만든다.





더운 여름날, 그 곁을 지나는 누구에게나 시원한 그늘을 선물하는 나무를 본받고 싶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그 자리를 버텨내는 것. 그리고 그 끈기로 그곳을 지나는 이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베푸는 모습처럼. 사소하지 않은 평범함으로 누군가에게 가장 멋진 찰나를 선물하고 싶다. 나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기록할 누군가의 여행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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