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마음, 나눔 받는 마음
당근대작전 한 달이 넘어가고, 나의 매너 온도는 48.7% 아주 핫한 여자가 되었다. 어느덧 우리 집은 비워진 그 자체로 인테리어 효과가 나오는 여백의 미가 여기저기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화로운 여백의 미가 아니라 여기에 뻥, 저기에 뻥 뚫린 여백일 뿐, 또 한쪽 편에는 아직 거래되지 않은, 선별 작업을 끝내고 배달되기만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인기가 없는 물건들인 건지 일주일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도 있다. 나는 왜 저 물건들을 싸안고 있는 것인가. 나눔을 하면 금세 가져갈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내 안의 놀부는 이제 밑지면 배 아픈 장사치가 되어 거래 가격을 재고 있는 건가.
정리할 물건들이 생각만으로도 차고 넘치던 초반에는 버리는 방법을 고민했다. 대형 액자부터, 지구본, 교자상, 트롤리 선반 등 대형폐기물로 버리려면 크기에 따라 비용을 내야 하므로, 그 돈이라도 안 내고 싶은 것이 최초의 의도였다. 당연하게도 당근을 이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가져가주는 것만도 고마운 마음이었으니 '나눔'이 많았더랬다. 그러나 장사꾼 마인드가 되어가면서 나눔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었고, 그나마도 돈을 받기엔 미안한 정도가 되어야 나눔으로 넘어가곤 했다.
몇 년 전 중고로 가져왔던 실내 자전거를 처분했던 때였다. 이사하면서 부딪히는 바람에 자전거 의자 뒤쪽 꽁무니가 살짝 깨졌는데, 운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테이프로 대강 고정해서 사용해오고 있었다. 중고의 중고인 데다 이것이야말로 돈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기에 나눔으로 올렸는데, 가져가겠다고 손 드는 사람이 바로 나타났다. 파손된 부분을 사진으로 밝혔는데도 역시 나눔은 실패하지 않는구나. 워낙 큰 물건인 만큼 가지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라 집까지 가지러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외출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비대면으로 가져가주십사 부탁드리고 낑낑거리며 무거운 자전거를 현관문 앞에 내놓고 나는 외출을 했다. 그런데 무거운 자전거를 가지고 가신 분은 나의 나눔에 나눔으로 답하고 가신 게 아닌가. 감사 인사와 함께 현관문에 종이가방을 하나 걸어두고 가셨는데, 그 안에는 매일 먹을 수 있는 견과류 10봉 박스가 들어있었다. 흠 있는 물건을 가져가면서 이런 걸 남기고 가다니.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도 않고 문 앞에 두고 가져가시라 한 게 왠지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되었다.
또 한 번은 가드닝 용품을 몽땅 나눔 했던 때였다. 크고 작은 화분 여러 개, 흙과 자갈, 모종삽과 식물용 가위, 화초 영양제 등등 한가득이었는데, 나는 이 모든 걸 처분하는 게 과제였으므로 나눔 받겠다는 분이 있다면 고마운 마음이었다. 나눔은 거래글 업로드 버튼을 누르면서부터 긴장해야 한다. 선거 유세장에서 지지자 이름을 외치듯이, 당근! 당근! 줄기차게 울려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제일 첫 번째 문의자와 비대면 나눔을 하기로 하고 문 앞에 몽땅을 내놓고 외출을 했다. 약속 시간 조율이 어려운 경우, 며칠 후 약속을 잡기보다는 편한 시간에 와서 비대면으로 가져가는 편리함을 알게 된 나였다. 또 거래 건수가 늘면서 집 앞 대로변까지 나가서 기다리는 것에도 지쳤는지, 나눔 하러 나가는 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즈음이었다. 가지러 이동해 오는 사람이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인 건지,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게 내 성미에 불편해서였는지, 내가 나가서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90프로 이상이었기에, 나눔 하러 외출하는 시간은 절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마도 화분을 가져가신 분은 여자분이었나 보다.
"집에서 구운 계란을 만들었는데, 혹시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어요. 문 앞에 두고 갑니다."
직접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구나. 또 한 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고마움의 표현을 해본 적이 없기도 했거니와, 나눔이랍시고 처분하는 내 마음의 홀가분함만 생각했지,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조금은 반성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눔의 나눔을 주고받는 현장에서 얼굴을 대면하여 직접 주고받았으면 서로 훨씬 감사함을 나누었을 텐데 말이다.
가족들과 구운 계란을 함께 먹어보고는 그 고소한 맛에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사 먹는 구운 계란보다 훨씬 맛있네!"
잘 먹겠다고 이미 감사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한 마음을 한 겹 더 입혀 조심스레 메시지를 남겼다.
"나눠주신 구운 계란을 아이들과 감탄하면서 먹었어요. 온라인에 많은 구운 계란 레시피로 만들면 이렇게 되나요? 특별히 만드시는 방법이라도 있는지요.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고 레시피를 물어올 때의 기쁨을 나는 안다. 물론 내가 레시피를 알려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눔에 나눔으로 답한 분께 이런 방법으로라도 나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을 핑계 삼아 다가올 해외살이에서 더 이상 사 먹을 수 없을 구운 계란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온라인에 구운 계란 만드는 레시피가 넘쳐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만드는 것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갑자기, 친정엄마가 만든 반찬을 맛보고 그 레시피를 시도해보고 싶어지는 마음 같달까. 그렇게 받은 레시피로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아주 고소한 구운 계란을 손쉽게 성공했고,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해외살이에 활용할 꿀팁하나를 획득한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아이의 학교 체육복을 나눔 받으러 딸기 한팩을 들고 나타난 동네 이웃, 침대 가드를 받아 들며 비타민 음료 2병을 건네는 분, 주전자 두 개를 텃밭에서 잘 쓰겠다며 직접 기른 참외 몇 알을 내미는 어르신, 하다못해 차에 있던 허브티 티백 몇 개를 건네는 분도 있었다. 내가 만약 나눔 받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고마움을 표시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마움 가득한 두 손으로 물건을 받아 들지언정 보답할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었다. 물론 그런 보답을 하지 않고 받아가기만 한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눔 받는 입장의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받아보니 이런 적극적인 표현이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 깨닫는 것이었다. 의무는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동. 나는 세상을 더 유연하게 살아가는 팁 하나를 마음속에 챙겨두었다.
나눔 하기를 주저하게 되었던 놀부 마음이 부끄럽게도,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서는 이런 마음들이 대가로 돌아왔다. 돈으로 책정하지 못해 나눔으로 떨궈진 물건들의 아쉬움은 그런 마음들로 더 푸근하게 채워졌다. 어쨌거나 무료 나눔은 글자 그대로의 무료는 아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