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비워내면 내면의 RAM 공간도 넓어진다.
남길 물건들은 남기고 과감히 처분할 것들은 처분하고, 모래를 체에 걸러내 굵은 돌멩이들만 남은 것처럼 집 안의 구석구석들이 조금씩 비워지자, 마음속에 꽉 차서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형체모를 무언가가 점점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공간이 늘어갈수록 이삿짐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한정돼 있는 시간에 대한 여유로움도 생기는 것 같았다. 실행해야 하는 시점의 마지노선까지 묵직한 걱정으로 기다리는 것보다, 1차로 정리를 하고 나니 몸은 바쁠지언정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결혼 후, 내 살림이라는 게 생긴 후로, 내 기억력이 허용하는 만큼의 물건이 언젠가부터 한계치를 넘었다. 언젠부턴가 계절옷을 교체할 때나 이렇게 대대적인 짐정리를 할 때마다 '이런 게 있었네? 그것도 모르고 또 샀네?'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전에는 분명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유아기 때까지였나. 내 머릿속 데이터를 훑으면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인지, 어디에 보관했는지 더듬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물건의 양이 기억력의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아닌가? 내가 늙었나? 40대 중반에 이른 내 기억력이 이제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느꼈던 것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 고민이 막막했던 것도 어쩌면 여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내면의 여백이 없었던 탓은 아닐까. 마치 책상 가득 물건으로 가득 찬 탓에, 작업 가능한 공간은 사방으로 보아도 눈앞의 한 뼘 면적이 전부인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 쓸데없는 메모리로 가득 차있는 탓에 차근차근 생각을 처리해 나갈 여유 메모리가 현저히 부족한 상태. '나'라는 컴퓨터는, 가지런히 펼쳐놓고 들여다보면서 겪어내야 할 인생의 숙제들을 처리해 내기에 내면의 RAM 공간이 너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혼돈과 기억력 초과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집안 곳곳을 흔들어 털어내고 비워냈더니,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 사유 공간도 넓어지고 심지어 여유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일까.
비워진 공간만큼 내 근심도 덩달아 비워진 자리에는 뿌듯함이 채워졌다. 내 기억 저장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나던 물건들을 덜어내 휴지통으로 팔랑팔랑 날려 보내고 나니, 머릿속도 개운한 느낌. 멀쩡하게 생긴 지우개가 종류별로 수십 개가 나오고, 더 이상 쓰지 않는 주방 도구들 , 아이들이 타던 인라인도, 몇 번 입고 걸려만 있는 옷도 줄줄이 나왔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세 달여 기간 동안 80건이 넘게 중고 거래로 처분을 했는데도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뭘 이렇게나 많이 끌어안고 살았을까?
그때그때 비우면서 살면 되었을 것을.
참 많이도 사들였구나,
반짝 사용하고 내팽개쳐둘 것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살다 보면 또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게 될 텐데, 이제는 사들이기보다는 적당히 부족한 채로 살아보면 어떨까. 미니멀하게. 물건이란 것은 나에게 오는 순간부터 그 존재 자체로 내 머릿속 사유 공간을 차지하고, 내 주위의 물리적 공간도 차지한다. 내 마음도 움직일 공간이, 내 몸도 움직일 공간이 필요할진대 그 공간이 넓을수록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창의적인 내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질적 풍요로움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정작 정서적으로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어쩌다 겨우 한번 몸을 비틀어대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백이 있어야 우리는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 체로 쳐낸 굵은 돌멩이들 사이에서 나는 한껏 자유로움을 느낀다.
비우자, 비우자, 더 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