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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Mar 13. 2024

맑은 거울이 되려면

새 학기 첫날을 맞이하는 단상

2024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올해에는 3월 2일이 아니라 3월 4일이라는 것도 엄마들에겐 뒷골이 땅길 일이다. 탓을 하자면, 나의 1,2월은 글쓰기도 거의 포기했으니 말이다.


새 학기 첫날, 기대 반, 긴장 반일 아이들의 낯선 하루가 나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해방감도 잠시 제쳐두고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렸다. 6학년이 된 둘째가 먼저 들어온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하던 녀석이다. 그랬던 녀석이 친구 3명을 사귀고 왔다며 신나게 조잘거린다. 평소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를 잘 풀어놓지 않는 녀석이라, 이때다 싶어 아주 신나게 맞장구를 쳐준다.


"그래서? 걔가 뭐랬는데?"

"세상에! 쑥스럽지 않았어? 대단한데!"


저 녀석에게는 1년 중 오늘이 가장 말 많은 날일지도 모르니, 한껏 호응을 해주어야 한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호들갑을 떠는 짱돌 같은 녀석. 아! 사랑스럽다! 첫째는 6학년 때 이미 성숙한 어른스러움이 묻어났었는데, 막내는 6학년이 되어도 귀여우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1시간쯤 후, 중2 첫날을 마치고 첫째가 들어온다. 얼른 기색을 살펴보니, 지치고 시무룩한 표정이다. 반 배정도 맘에 든다며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녀석이다. 방송반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개학식, 신입생 입학식 진행 때문에 반 분위기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내내 뛰어다녔단다. 반 친구 중에는 시끄럽게 분위기 흐려놓는 아이도 많고, 담임선생님도 상냥하지 않았다고. 반도 망했고, 담임선생님도 망했어!


"그랬구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잠깐만 보고 어떻게 알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달라질 거야."


표정에서부터 먹물 같은 절망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맑은 물에 먹물이 퍼져나가듯이 내 마음도 자꾸만 어두워지려고 한다. 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했지만, 탁한 감정은 도무지 옅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 마음까지 어두워지니, 우선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생각하며 물러났다.


남편이 퇴근하고 다 같이 모여 앉은자리에서 또 한 번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생각났는지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하나를 보여준다. 미국 본사에 있는 그룹 총괄 매니저의 승진 공지가 떠서 축하 메일을 썼더니, 답장이 왔단다. 평소에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은근한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 나누곤 했던 터라, 나도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야?"

"잘했네. 그런데 당신한테 영향이 될 부분은 뭔데?"


이 남자도 나한테 이야기하며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에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아이들 근황 외에는 대화 주제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런 대화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다.


남편까지 3월 첫날의 일상을 전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내가 '들어주는 자', 즉,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하루동안 겪었던 일과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그것에 반응하는 내 표정과 피드백에서 반사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오늘 잘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겠구나.'

' 내일은 이렇게 해야겠구나.'


가족의 의식주를 돌보는 것에서 나아가, 가족 전체의 정서적 구심점이 나에게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었던 때, 구심점은커녕 깨진 거울이 되었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깨진 거울을 마주한 남편과 아이들은, 조각난 거울에 비친 여러 개의 자기 모습 중에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혼란함을 느꼈을 것다. 나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유지하여 온전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도 꽤 만족스러운 일이구나. 새 학기 첫날인 오늘이 바로 그런 내가 도드라져 보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 오히려 내가 더 가족들의 일상을 알고 싶어 하고, 공유해 주길 목말라하고 있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그날의 하루를 묻고 나누고 나서야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일까. 부정적 상황에서는 가족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게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하루를 챙겨 내 마음에 담는 이유는 뭘까. 돌봄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자의 숙명인가? 그렇다면 이런 나를 비춰 보여주는 거울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 돌봄 노동자들의 외로움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겠구나. 다른 가족들의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일상과 감정은 돌보지 못하는.


아이를 등교시켜 놓고 카페에 모여 앉아있는 엄마들을  팔자 좋다고 욕하는가? 그들은 자신을 비춰줄 거울을 찾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바깥의 경쟁 사회에서 지쳐 돌아온 가족의 거울이 되어주느라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내가 잘하고 있는지 비춰보기 위해 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도 깨지거나 지저분한 거울도 있으니, 나를 올곧게 비춰줄 깨끗하고 맑은 거울을 잘 찾아낼 필요가 있겠다. 또, 내 가족에게 내밀어 줄 거울을 윤이 나게 잘 닦아두려면  나의 일상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 타인에게도 더러운 거울보다는 정직한 거울이 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에너지가 퐁퐁 솟아나면 좋으련만, 너지 화수분 인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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