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고 비가 내리며 이제는 여름이 조금씩 물러나가는 것 같아 아쉬워 계곡을 찾았다.
어제 가기로 했지만 비 오는 날엔 계곡을 멀리한다.
아무리 얕은 계곡이라도 큰코다치는 일이 생긴다는 걸 알기에.
시골에서 물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계곡이 있었다.
성인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는 곳이었는데도 사고가 일어났다.
시골사람들은 알기에 피해다녔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사람들은 사고를 당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사고에 지날 때마다 항상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작고 얕은 곳이어도 날씨가 흐리면 물은 멀리한다.
자연은 한없이 자비로우면서도 자비가 없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아주 날씨가 화창하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화창하면 살짝 겁이 난다.
5분이 뭐야, 뙤약볕에 1분만 걸어도 땀이 송글송글이다.
예전 살았던 동네에 계곡이 보이는 좋은 밥집이 있다 하여 오랜만에 찾았다.
이 근처에 살았을 때는 왜 이 좋은 곳을 오지 않았을까.
사람은 꼭 곁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없어지면 소중함을 알게 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다른 동네로 가게 되니 이곳이 애틋하다.
오랜만에 밥집에서 멋들어진 한상을 먹었다.
날씨도 좋고 초록초록한 산도 보이고 계곡도 보이니 이것이 신선놀음이구나. 싶어 테라스에 앉았는데 현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래도 맛있다며 밥을 한 공기는 뚝딱했다.
해는 중천에 있고 배까지 부르니 열이 더 오른다.
계곡에 가기가 어려워 에어컨이 있는 카페로 피신했다가 해가 뉘엿뉘엿해져서 드디어 계곡에 입성했다.
아직도 해는 중천이지만 기력이 조금 약해졌다.
윤슬때문에 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어렵지만 발을 담가보니 시원한 게 물에 과일을 담가놓고 싶어진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아 발만 담그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친구와 대화를 한다.
밖에 그냥 서 있을 때는 너무나 더웠는데 발이 차가우니 덥지가 않다.
'아 시원해. 오길 잘했다 그치?'
물에 들어오니 어린아이 같이 둘 다 깔깔거린다.
시간이 늦어 사람들이 없어지니 오리들이 나타난다.
뭘 먹는지 자꾸 잠수를 하며 엉덩이를 보여주는데 꽤나 귀엽다.
처음에는 눈치 보며 피하다가 발을 담그고 조용히 가만있으니 가까이 온다.
조그마한 발로 헤엄을 치는데 물갈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해가 산을 넘어갈랑 말랑하니 바람도 덩달아 시원해진다.
사람들도 없어지니 우리는 이리저리 휘젓고 다녀본다.
가보고 싶었던 작은 폭포에 발을 담가보기도, 돌을 모아 나의 건강을 기원한다며 소원탑을 만들어주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호사스러운 휴가도 좋지만 이런 소소한 계곡에서의 몇 시간도 참으로 행복하다.
몸에 밴 숯불냄새와 물에 비친 윤슬과 세차게 흐르는 물 가운데 오롯이 서있는 돌탑이 마음에 깊이 담기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