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알았다. 용돈을 꾸준히 모아서 저축하면 목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시험을 잘 보면 자격증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도, 이력서를 잘 쓰면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평소 진지한 대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낯간지러운 주제라고 치부해 버린다. 뭐 그런 걸 얘기하냐며 대화의 주제로 올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그저 가벼운 대화 주제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꽤 중요한 문제다.
2022년 세계 행복지수 통계 가운데 한국의 행복도가 OECD 38개국 중 36위로 최하위권이다. IMF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규모는 2022년 세계 12위로 경제 대국이지만 우리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고 조사됐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국민인데 왜 그럴까? 직장인이 되어 친구들과 대화할 때 연봉이 얼마냐고, 올해 상여는 얼마를 받았냐고 묻는 건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주제로 느낀다. 그러면서 행복하냐는 질문은 고리타분한 선비 같다고 느끼는 건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제일까?
2013년 5월 취업을 준비하던 중 E 회사에 2차 면접을 보러 갔다. B 이사님과 일대일 면접이었다. 거주지에 대한 내용과 전공에 대한 이야기 등 가벼운 대화를 시작으로 면접이 진행됐다. 2차 면접은 나를 포함해서 총 2명이었다. 2:1의 경쟁률. 이것만 잘 보면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바들바들 떨면서 이사님 방에 들어갔다. 오래전이라 다른 것들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B 이사님의 마지막 질문은 11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유리씨는 행복한가요?”
이 질문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가 내게 행복한지를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이 지금도 기억에 남고 머릿속을 맴돈다.
“이사님, 저는 어딘가에서 제 소개를 할 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매 순간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저는 지금도 정말 행복합니다.”
내 대답이었다. 그렇게 그곳은 내 첫 번째 직장이 되었다. 입사한 이후에 이사님과의 회식 자리에서 저 질문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B 이사님은 살면서 행복이라는 가치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면접 때 저 질문을 늘 던지신다고 하셨다. 이후로도 나는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B 이사님이 했던 질문에 대해서 곱씹어 본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나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잘 살고 싶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이야기하지만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에세이 책과 자기계발서들이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행복하기 위한 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공감이 된다면, 그 공감에서 내 생각을 뻗어나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고 뭘 좋아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깨달을 수 있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혼자서 생각하고 터득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힌트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그들도 배운 적이 없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고 있을 뿐이다.
어른들이 늘 말하길 살면서 공부가 제일 쉬운 거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했다. 그들은 공부를 안 해도 되니까 저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학생때는 정확한 답이 있는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명확한 길잡이가 되어 줄 선생님이 늘 함께 였다. 학창 시절 공부는 인생에서 제일 쉬운 거였다. 어른이 되어 인생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일들에 정답 따위는 없다. 내가 한 결정과 살아가는 인생이 옳은 길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은 어느 곳에도 없다.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다. 홀로 넓은 세상에 던져졌고 스스로 최적해를 찾아 그저 그것을 선택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이 꼭 필요함을 과거의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먼저 들려줬다면 타인으로 상처받고 외부의 영향으로 방황했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스스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포함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건 전국민 공통의 국룰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걸 다들 알지만 모두가 서울대에 입학하는 건 아니지 않나. 결국 겪어보고 깨닫는 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