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 걸음이 멈춘 골목에서

모로코 페스, 짐꾼 당나귀의 하루

by 타이완짹슨

여행 한 줄, 사진 한 움큼 EP 10.


어깨 위로 짊어진 인내의 발걸음

어릴 적 동화책을 보면 친근하게 등장하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당나귀였다. 대게 동화 속 녀석들은 말썽꾸러기, 천방지축 등 적당히 귀여운 개구쟁이 같은 기억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나, 현실 속 동화는 잔혹했다. 수천 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진 모로코 페스의 오르막길에서 마주한 녀석의 삶은 어쩌면 비루함 그 자체였다.

한걸음 한걸음이 버거워 보였고, 한걸음 내딛을 때 다른 다리들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사진 또한 잠시 숨을 고르며(정확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잠시 멈춰 있는 순간에 찍은 사진이다. 녀석이 큰 숨을 내쉴 때 코 끝이 부르르 떨리며 내던 소리를 두 눈과 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니, 사진부터 찍으려고 했던 나 자신이 살짝 미워지려고 한다. "어쩌면, 상대의 고통보다 나의 유희가 더 중요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하지만, 같은 상황에 또다시 마주한다 한들 '그저 지나가는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아,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수많은 여행에서 여전히 기억되는 어쩌면 평생 가져갈 기억을 만들어 준 당나귀에게 감사하자.

안쓰러운 감정보다는 녀석을 만난 것에 감사하자.
굳이, 지나간 일에 연민이라는 감정을 불어넣지는 말자.

어차피, 각자 가야 할 길이 달랐을 뿐인데, 우연히 마주 한 인연에 몰입하여 현재의 감정에 생채기를 내지는 말자.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혹은 여행이든, 일상이든."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09화여행, 때로는 우동 한 그릇이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