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의 행복
막막하게도 푸르기만 한 하늘 아래, 하루를 새롭게 시작해 본다. 하지만 조금도 새롭지 않다. 무엇이 기뻤는지 슬펐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기분의 이름이 붙지 않는 상태가 며칠째 이어진다.
시간은 분명 흘렀을 텐데, 무엇도 느낄 수 없다. 어제와 오늘이 단절되지도 이어지지도 않은 채, 매 순간 ‘지금’이라는 단어 속에 갇혀 있다. 단지 시간을 통과할 뿐, 그 흐름에 감정은 실리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는 사라졌다. 기쁨은 쉽게 흐려지고, 불행조차 분명하지 않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도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괜찮을 때가 있다. 근거도, 사건도 없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단지 운이 좋아서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런 운명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행복해지기 위해 수없이 애썼지만, 행복은 항상 조금 모자랐다. 마음은 점차 피로해졌다. 멈춰 서 있는 듯한 감각 속에서 문득 애쓰지 않아도 살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평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힘을 놓았고, 삶이 나를 지나가게 두기 시작했다.
감정은 이유 없이 흐르고, 고요는 언제나 그 끝에 남았다. 근거 없이 반복되는 행복과 불행. 이 감정의 행렬은 돌고 돌아 나를 둥글게 만들었다.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슬픔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이 회전하며 모서리를 깎아내렸다. 이것이 순환이라는 이름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순간, 진지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깃든 절망의 빛이 거두어졌다.
불과 몇 해 전, 나는 끝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환한 순간을 두려워했고, 그것이 사라질 자리를 미리 상상했다. 순간을 사랑하기보다, 상실을 먼저 의심하며 살았다. 사랑은 조심스러웠고, 상처는 익숙했다. 그렇게 감정을 미리 줄여 쓰는 동안, 조금씩 고립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집요하게 살아왔던가.
순간을 사랑하기보다, 다가올 상실을 먼저 의심하며.
쾌락의 극치에서조차 마음은 금세 공허로 기울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는 순간부터 이미 불행의 구조 속에 들어섰다는 자각. 그리고 그 자각을 외면할 수 없는 의식의 투명함,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에 도달했다. 그 모자람은 내가 실패해서 생긴 것도, 노력이 적어서 생긴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결되지 않은 구조를 지닌 채 태어나는 것이며, 행복할 수 없다는 결핍은 또한 나의 일부였다.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살아 숨 쉬는 여백이었다.
완벽하려는 애씀이 무의미하다는 사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살아간다기보다, 살아질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택했다. 고요는 쉽게 찾아왔고, 불안은 그만큼 쉽게 사라졌다. 그러나 조용해진 삶은 점점 낯설었다. 아프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도 사라졌다. 차분했지만, 어딘가 멈춰 있었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완성은 없다고 믿었지만, 나는 끝내 완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흐름에 나를 맡긴다 말하며 나는 나를 피했다. 그렇게 지워낸 끝에 남는 것이 나일 거라 믿었지만, 그곳엔 허기뿐이었다. 텅 빈 평온은 견뎌내기 위한 하나의 방어였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수용해야 하는가. 포기하지 않는 수용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하여 나는 나의 삶에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그저 흘러가겠다는 의지도, 그 어떤 자각도 접어두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나라면,
영원한 무질서의 거처, 그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행복은 결코 순결하지 않으며,
그 미소엔 언제나 눈물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웃었고,
시간은 오직 정지한 채 나를 삼켰다.
과거는 내게 이름을 주지 않았고,
미래는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바란다.
부디 나의 무지 속에서,
한때 운 좋게 행복한 사람이었기를.
.
.
.
.
.
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