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 (殉愛)

다시 사랑하리

by 김가희


끝을 알면서도 시작되는 삶이 있다. 고통에 도달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뻗는다. 반복된 상실과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관계를 향해 걸어간다.


그것이 무모함인지 순전한 용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전부를 내어본 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심이란 그런 자에게 허락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눈빛 하나, 혹은 함께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살아난다. 이해도, 판단도 불가능한 채로 마음은 흔들리고 우리는 이끌린다.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하는 감정의 움직임 앞에서, 우리는 결국 또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다시 걷는가?


그렇게 삶은 또 한 번 시작되고 만다.




자연은 언제나 말없이 답했다.


사랑조차 주지 못하는 자,

그것은 가장 외로운 인간이오.


그리하여, 알면서 내어주는 자.

그리하여, 상처 난 손으로 다시 껴안는 자.

이해를 등진 채, 다만 자신을 태우는 자.


기꺼이 함께하라,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운명이니...



유독 그 눈망울에 나의 마음이 일렁인 이유를 끝내 설명할 수 없었다. 그건 감정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웠고, 한 조각의 빛처럼, 다만 스쳤을 뿐인데도 마음이 젖었다. 그것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를 찾아온 어떤 마음이었다. 이유 없이 피는 것들은 늘, 이유 있는 것들보다 오래 남는다.


애써 피하지 않기로 했다. 끝을 아는 자만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상실의 어둠도, 책임의 무게도 내 안에 고요히 가라앉은 지금, 더는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안 채로 내민 손에는 순수만이 있다. 이것은 다짐이었고, 기도였고, 더 이상 감정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누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면

그래, 나의 운명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말은 되돌릴 수 없고, 어떤 시선은 다시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이해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순간들이 되감기듯 떠오르고, 지나간 눈빛 하나에 마음이 붙잡힌다. 애써 잊으려 할수록 떠오르는 장면들, 끝났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기이한 향으로 다시 살아난다.


한 존재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쓰라리다. 상실은 단지 그 순간의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시간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촉발이다. 존재가 남긴 향수는 살아 있는 자의 삶에 오래도록 맴돌며, 지워지지 않는 향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슬픔의 무게를 끌어안는 일은, 결국 나의 몫이었다.



인간은 상처받을 것을 알기에 감정을 온전히 길러내지 못한다. 사랑보다는 두려움이, 기대보다는 회피가 먼저 자라난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수없이 베이고 마른 마음이 만들어낸 마지막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키우는 일은 곧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우리는 그 무게를 견딜 용기를 갖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가볍게 만든다.



그 아이는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남았다는 것은 기억을 견디는 일이다. 어떤 날은 무언가를 해주지 못한 모습이 선명해지고, 어떤 밤은 충분히 머물지 못한 마음이 나를 깨운다. 변명도, 해명의 기회도 사라진 채로 통증과 함께한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흐르고 고여, 내 안에 가장 오래 남아 버렸다. 나는 표현의 부재와 사랑의 낙태를 뒤늦게 후회했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으며 흘러간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잃고, 지금의 관계가 한때의 순간을 잃는다. 그 모든 사라짐을 견디는 일이 바로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아프다는 건 결국,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며, 슬픔이란 끝내 보내주지 못한 영혼의 형체다.




세상에 있는 기쁨 가운데 가장 고결한 것이 무엇인가.


자연은 우리에게 이별의 결론을 주었지만, 그 사이 모든 과정을 여백으로 남겨주었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어떤 색으로 덧입힐 것인지는 오롯이 오늘의 몫이다. 삶은 주어진 운명 위에 내가 그려나가는 수묵이며, 그 선택의 붓은 나의 손에 있다.


관계 맺음의 이치를 알아버린 이후, 나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해졌다. 이 모든 것을 알고도 끝까지 품어내는 것. 앞으로의 생에서 마주할 모든 혼란과 환희를 거스르지 않고 통과하는 것. 나를 지켜주던 수많은 무기들로부터 한 겹씩 벗어나 온갖 감각으로 고통을 응시하는 것. 이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알면서도 전부를 내어주는 삶의 태도다.



나는 여전히, 아니 아마 평생을 감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끝내 나를 따라오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겠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고통을 알고도 마음을 내민 내가, 애석하게도 대견하다.


한 존재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일.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결국 나의 일생을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선택. 뒤엉킨 결핍과 서툰 존재들이 그리는 단 하나의 세계.


그것은 순애,
아주 우매하고도 신성한 길을 묵묵히 걷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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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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