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우리

두 번째 만남 -10

by K기노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일상에 잔잔한 변화를 안겨주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매사에 의욕적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마음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온전히 나로 집중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우려하던 일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아도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내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지.

"뭔 일? 써언, 요즘 유쾌하지 않다."

수찬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커피 한 모금을 삼키는 것밖에는 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요즘 들어 다시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꿈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우리였다. 슬픈 얼굴의 엄마와 화가 나서 소리 지르던 아빠.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지켜보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엄마가 슬퍼해서 미안해. 아빠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우리가 불행해서 미안해.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알람을 듣지 못하고 내가 흐느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진짜 내가 울었는지 꿈속에서 어린 내가 울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베개커버는 흥건히 젖어있었다. 잠깐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그대로 침대에 앉아 아직 남은 울음을 소리 없이 내뱉었다.

원치 않던 그리움에 내 마음이 아파와.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휴대폰 창에는 사랑하는 우리 엄마라고 찍혀있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자다 일어났으니까 그렇지. 빨리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 무슨 일 있어요?"

"창윤이엄마에게 이야기 들었다. 창윤이하고 만났다며?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뭘 어찌 되긴. 안 맞아서 안 만나기로 했어요."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평소에 엄마라면 귀찮을 만큼 나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을 테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집에 올 수 있니?"

"왜요?"

"꼭 이유가 있어서 너는 집에 오니?"

"그럼 금요일 저녁에 갈게요."

엄마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는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출근 준비하기에도 촉박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 이 공간 속에 떠다니는 시간은 그대로 멈춘 듯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어린 시절의 나를, 또 우리를 자꾸만 소환해내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엄마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미 기억 저편으로 밀어낸 줄 알았던 그때의 엄마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없이 약했던 엄마는 아빠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슬픈 얼굴로 그저 묵묵히 감내하고 있던 약하디 약해 빠진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더 이상 엄마의 눈물을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했던 날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중적인 감정은 나의 마음도 뒤흔들어놓았다. 대상이 없으면 자연히 소멸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날들의 트라우마는 절대, 영원히,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나는 이미 체념했다.

엄마 집으로 가는 거리에 가로등 하나가 깨져있었다. 듬성듬성 나무가 세워져 있던 그곳에 유독 깜깜한 그 자리에서 문득 어두운 얼굴이 떠올랐다. 매일 이곳을 지나며 무수히 바뀌었을 그녀의 감정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서자 못 보던 남자 구두가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엄마에게 손님이 찾아오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오기로 약속한 날에 다른 이의 방문이라니.

부엌으로 들어서자 식탁에 앉아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잘 웃지 않는 엄마의 얼굴은 무슨 일인지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왔니?"

엄마의 말에 누군가 뒤돌아보았다. 그 사람이었다.

"놀랐니? 내가 불렀다."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으레 가볍게 인사만 한 뒤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너 때문에 창윤이를 부른 게 아니야. 내가 보고 싶어서 부른 거야."

엄마는 변명을 진실인 양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과 내 눈치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응."

나는 무미건조한 대답을 툭 던져놓고 그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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