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다툼 : 교수, 판사, 변호사

로스쿨라이프스토리 3화 : 법조계의 다툼. 교수, 판사, 변호

by 기신
hammer-802301_1280.jpg


로스쿨 라이프 스토리 3화-법전과 사람

: 법전해석권을 둘러싼 법조계의 다툼. 교수, 판사, 변호사


1

“법 같은 건 그냥 법전 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이 살면서 꼭 필요하지 않듯이 법도 인생을 살며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인은 법을 굉장히 높고 멀며 다른 세상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재판도 일생에 한 번 겪는 진기한 일인 경우도 아직 적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법’에 대해 자신이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성문법의 나라이며 법이 법전에 명시되어 있어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로스쿨에 들어오는 입학생도 이런 생각 때문에 준비 없이 들어왔다가 큰 코 다치곤 한다.

일단 법전은 두껍고 한자가 많으며 굉장히 모호한 용어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목상 성문법 국가인 한국이지만 실제로는 불문법 국가 못지 않게 ‘대법원 판례’가 실질적인 법의 기능을 하고 있는 점도 로스쿨에 들어와서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전을 ‘해석’하는 일이다.


법전의 해석은 법 문구의 문리와 논리와 취지와 목적을 살펴서 정확하게 따져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무척 복잡하다.

바로 이 ‘법전’의 해석을 배우기 위해 예전에는 법학대학/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이, 지금은 로스쿨이 ‘법전 해석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해석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나 정치적 압력, 고정관념의 붕괴에 따라 이상한 판결도 많다.

studying-951818_1280.jpg


그런데 일반 시민이야 대법원을 욕하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로스쿨 대학원생이 되면 이 문제가 ‘법조계’ 내부의 알력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


가장 극명하게 겪게 되는 부분이 ‘변호사시험’ 모의고사와 로스쿨 재학 시절 치르는 중간/기말고사의 극명한 차이다.


판례만 다루면 되는 변호사시험과 교수의 학설을 반드시 다루어여 하는 대학원 시험의 차이랄까.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시험을 통과하기까지 겪게 되는 어려움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오늘은 이 싸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겠다.



2

먼저 한국은 ‘성문법’ 국가라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성문법과 불문법이란 대체 뭘까?


[성문법(成文法)이란 문서(文書)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일정한 절차와 형식을 거쳐서 공포된 법을 말한다.]



[불문법(不文法)이란 문서(文書)의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은 법으로서 일정한 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존재하는 법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극명하게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일반 교양 서적에서는 영미권은 ‘판례’를 중심으로 하는 불문법 국가이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륙, 일본, 한국은 ‘법전’을 중심으로 하는 성문법 국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국과 미국에도 성문법이 존재하고(물론 영국의 경우에는 명백한 헌법 대신 전통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기는 하다), 독일과 일본과 한국도 최고 법원(한국은 대법원)의 판결이 하급심을 사실상 규율하는 불문법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법계.png

<붉은색 : 불문법, 푸른색 : 성문법>


때문에 법전, 그리고 ‘판례’의 해석이 한국의 법제도에서도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로스쿨 재학 시절 치르는 시험, 로스쿨 졸업시험, 그리고 변호사시험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 법전(판례 포함)의 해석을 둘러싸고 법원과 교수, 그리고 변호사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린다는 점이다.


같은 법전과 판례를 두고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가끔은 신기할 정도로 판이한 해석을 내린다.


<법의 문리해석, 그리고 논리해석_강해룡 변호사, 2017. 11. 30. 법률신문>


이는 법의 발달 과정에서 법을 해석하는 방법론이 여러 가지로 나뉜 점과 역사적으로 법전을 해석하기 위해 ‘법조계’ 각 세력들이 서로 힘을 겨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민법 혹은 형법 교과서를 보면 보통 법의 해석론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학리 해석>
① 문리 해석 : 법규에 사용된 문장 용어의 의미를 그 문자가 가지는 일반적 의미에 따라 해석
② 논리 해석 : 문자의 의미에 구속받지 않고, 법을 논리적 체계로 구성하여 각 조문의 유기적 관련성/논리적 관련성을 살펴 해석
③ 역사적 해석 : 입법자의 의사를 법 제정 당시의 주관과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해석
④ 목적론적 해석 : 법규의 문자를 최대한 넓혀 확대해석하거나 축소해석
⑤ 합헌적 해석 : 헌법의 취지에 따라 해석


<유권 해석>
① 입법 해석 : 입법 당시에 용어의 의미를 법령 자체에서 규정
② 행정 해석 : 행정관청이 행정부 내에서 통일적 집행을 위해 해석
③ 사법 해석 : 법원이 구체적 재판에 법을 적용하기 위해 행하는 해석


이 중에서 사법부, 곧 대법원이 내리는 판결이 사법 해석에 해당하며 사실상 현재의 법체계에는 헌법재판소에 가는 것 말고는 뒤집을 길이 없는 최종적인 법 해석이 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 결과를 위헌 심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헌법재판소 "법원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 아냐", 2018-08-30>


다만 법 자체에 대한 위헌 심사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일견 대법원이 내리는 사법해석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살펴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로스쿨 재학생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학리해석> 그 중에서도 논리 해석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법 체계에 일관된 논리성이 있다고 믿고 이를 자신의 ‘학설’로 적시해서 논리 해석을 교과서에 적시하기 때문이다.



3

학설(논리해석)은 그렇다면 왜 필요한 걸까?



<양창수 前 대법관 "대대적 민법 개정 필요… 사회·경제 변화 담아야", 2018. 6.19. 법률신문>


[(양창수 전 대법관은) "채권양도는 프랑스법, 저당권 양도는 독일법계를 따르다보니 저당권부 채권의 양도는 어떻게 규율돼야 하는지 지금도 학설이 엇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략)
양 전 대법관은 우리 민법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해방 이후 법학 연구를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우리 법학은 일본의 우수한 법학자가 낸 교과서를 번역하는 이른바 '번역 법학'에 불과했고, 민법 연구 역시 '실제 법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 제시 여부'보다는 누가 교과서 시장을 석권하는지에만 관심을 쏟는 '교과서 패권주의'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교과서에서는 해답을 발견하기 어려운, 외국 학자들 업적에 의존해 우리나라 법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적 식민지'였다"며 "80년대 이후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후략)]


로스쿨 교수를 지낸 바도 있는 양 전 대법관의 지적 중 권리의 규율에 대한 학설이 엇갈린다는 부분이 바로 교수들이 법에 대해 관철하고자 하는 ‘논리 해석’이다.

시험에만 나오고 현실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대법원에서 판례(사법해석)를 결정하는 대법관들은 실상 나중에 교수가 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교수를 하다가 대법관을 가는 경우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무엇보다 모든 법을 대법관이라고 해서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외국의 ‘선진 판례’나 논리를 가져온 교수들의 ‘학설(논리 해석)’이 나중에 판례를 변경할 때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이런 사례는 미국이 선도하고 있는 저작권법, 공정거래법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학자(교수)들이 학설을 내놓으면 나중에 수년 뒤에는 판례에 반영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로스쿨 재학생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공부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치게 된다.



4

변호사는 바로 이 강고한 ‘논리 해석’과 ‘사법 해석’에 도전하는 역할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변호사가 하는 일은 논리해석과 사법해석을 충실히 따르는 역할이다.

법률 자문, 소송 수행, 행정 심판 등 대부분의 법률 사무는 기존의 해석을 얼마나 충실하게 찾아내고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교에서 세상으로 나오면 ‘학설’은 아무 소용 없다는 푸념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교과서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행정 해석이 주된 법 해석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도 현실이다.


법에 따르면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도가 사실상 법처럼 사회를 지배하고, 공정거래 소송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거의 70프로 이상 승률을 자랑하며, 노동법의 경우는 아예 노동부의 행정해석(노동부 질의 회시)이 법규처럼 법 해석의 주된 부분을 차지한다.


chess-433071_1280.jpg


변호사의 일은 이런 ‘행정 해석’과 싸우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른바 관행처럼 여겨지는 행정지도가 결코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부당하다고 심판을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때로는 사법부의 기존 판결에 도전하여 다른 판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법 논리를 가져오고 시대변화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멋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는 대부분 한 사람의 인생이나 부당한 권력 행사가 끼어 있어 승패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삼성전기 백혈병 근로자 첫 산재 인정, 법률신문, 2018. 9. 3>


예전에는 산업재해로 ‘해석’되지 않았던 사안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주는 이런 하급심 판결도 결국 변호사들이 기존의 ‘사법 해석’에 도전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5

이처럼 간단히 법전만 보면 될 것 같은 ‘법 해석’의 문제는 다양한 갈등과 논리 싸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로스쿨에 진학해 이 과정 전부를 배울 수는 없다.

다만 학리 해석과 유권 해석을 비롯한 전반적인 체계를 배울 수 있으며, 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해석에 문제를 느끼고 새롭게 바꾸고자 도전하는 길을 선택하는 법조인이 탄생한다.


물론 실제 로스쿨 수학 과정에서는 이중고가 발생한다. 즉, 로스쿨 학생이 학설의 향연에 시달리며 기말고사와 졸업시험을 치렀더니 정작 변호사시험은 판례를 얼마나 외우고 있느냐에 달려 있어 공부를 이중으로 해야 하는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판례(사법해석)만이 아닌 학설(논리해석)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법원 판례는 사실상 불문법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시대의 변화나 합당한 논리에 따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불합리한 판결이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설사 1심에서 일부 다른 판결이 나오더라도 고등법원에서 대법원 판례에 따라 뒤집어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판례를 바꾸기 위해 ‘논리해석’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법학교과서의 지나치게 많은 학설들을 보며 질려 버렸을 수험생이 있다면, 미래에 법조인이 되었을 때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쯤은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로스쿨의 모든 과정은 ‘법조인’이 되어 자신만의 ‘법 해석’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침>

keyword
이전 03화어떻게 로스쿨로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