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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Oct 16. 2023

소(所)는 누가 키우나11 : 너와 내가 마주친, 그곳

잊어버린 꿈 혹은 잃어버린 꿈을 재생하는 공간, 소집

솔직히 저는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워본 적 없는 그림이지만 길을 가다 눈에 띄는 골목이나 예쁜 건물 풍경을 보면 그냥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 그려볼까?' 이런 마음으로 49세에 미술학원에 등록해 처음 연필로 선을 그어보았다고 합니다. 박경희 작가님이 전시를 앞두고 제게 건넸던 이야기입니다.


처음 등록했을 때 학원 선생님이랑 맨날 이제 얘기하면서 그림 그릴 때 '선생님 나 60살 환갑잔치 때 전시할 거예요. 그렇게 장난 삼아 맨날 이랬거든요. 근데 이게 3년 만에. 우리 학원 선생님도 자기도 너무 울컥한다는 거야.

- 박경희 작가      


소집의 전시가 바뀔 때마다 틈틈이 찾아주던 박경희 님은 2022년 8월 18일 생애 첫 전시를 열며 전시 작가로 소집을 마주했습니다. 언젠가 첫 전시를 한다면 꼭 소집에서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모리의 정원>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모리의 '못 그린 그림도 작품이다'라는 대사에 전시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첫 전시를 용기 내 준 마음도, 소집에서 열어준 마음도 정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전시 세팅을 하던 날, 박경희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들을 펼쳐 놓다가 이내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림 속에 이야기들이 지금 다시 들리는 것 같다고도 하셨어요.  '아기를 낳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낳으셨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은 사람이라 선 하나 긋고 쉼 하고, 나무 하나 그리고 쉼 하고, 꽃잎 한 장 그리고 쉬면서 그림들을 완성해 나갔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장소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간 애틋한 마음도 고스란히 읽히는 그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려나간 마흔네 점의 작품을 소집에서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작품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떤 날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그리움을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내가 또 잊지 못하는 건 그 8월 18일 오후 1시 오픈할 때 이 문을 딱 열고 들어왔는데 그때 여기서 쏟아지는 햇살이 내 작품이랑 환하게 비치면서 뭔가 빛이 탁 난 거야. 그래서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그래서 내 작품에 햇살이 비치니까 더 예뻐 보이는 거야. 그냥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냥 그림들이 다 빛이 나는 느낌이었어요.  짧지만 그 순간이 나는 잊히지가 않아요.

- 박경희 작가


그렇게 박경희 작가님은 전시 기간 동안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거의 매일매일 소집에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소집으로 오는 출근길에 건너는 공항 다리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하늘의 풍경들, 흐린 날의 운무, 소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만나는 강아지 백구들, 감자적 냄새, 짬뽕집의 음악들 마저 다 좋았다고 말하는 작가님이었습니다. 작가님의 관람객을 맞이하는 다정한 마음도 고스란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집.. 일단 기은 씨가 좋았고. 기은 씨가 있는 이 공간에서 하면 왠지 좀 이렇게 믿음이 간다 그래야 되나. 그리고 내가 처음이니까. 이 처음이라는 거를 기은 씨가 되게 많이 불안하지 않게 믿음을 줬던 거 같아요. 디피도 많이 걱정됐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이 고민이 많았는데.. 하물며 저런 거 붙여주는 거.. 작은 제목 하나 해 주는 거. 이런 것들도 나는 이제 암담했거든. 다른 데 가면 다 암담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다 도와주고. 편안한 마음도 되게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박경희 작가


전시를 열기 1년 전의 봄. 어느 날 박경희 작가님께서 비가 온 후의 소집 풍경을 담은 그림 한 점을 제게 전해주셨었는데요. 몹시 고단했던 그날에 작가님이 건넨 그림 한 장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림으로 위로를 줄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해준 제가 정말 고마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전시를 열면 꼭 소집에서 열어야지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그때 꼭 같이 열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함께 꿈을 이룬 전시라서 꿈만 같더라고요. 가끔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이 공간에서 꿈을 키운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공간을 열어줘서 정말 고맙다'는 작가님들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울리기도 합니다.  이 공간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기도 해요.


박경희 작가님의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방명록엔 글선물이 가득가득 담기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생각지 않은 어떤 순간을 만났을 때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는 어떤 계기도 되는데 박경희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오셨던 분들 중에 또 그런 분이 계시진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제가 방명록에 기억에 남는 건 일단 우리 친정어머니랑 시어머니. 시어머니의 나이 많은 내가 네가 부럽구나. 내가 우리 어머님처럼 80이 넘은 분이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부러운 분도 있고. 그리고 '자기 와이프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러면서 이 작품을 사셨던 분이 있는데 그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있잖아요. 자기 와이프 꿈 이루어주고 싶다고. 그 부분도. 정말 감동이었는데. 저 살구나무, 내가 특히나 애정을 갖고 그렸거든요... 대문 이렇게 빼꼼히 열려 있는데 살구나무가 떨어졌는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살구나무 그냥 떨어진 거 막 주워서 먹어도 누구 하나 나와서 터치 안 해도 되는 그런 거. 문이 열려 있는 대문 요즘에는 흔치 않잖아요. 진짜 내가 저 집은 그런 마음인데. 지금 약간 햇살 표현이 아쉽기는 한데 '햇살이 쫙 내리비쳤던 집'이거든요.  저 그림 사간 저 부부가 꼭 꿈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 박경희 작가


저 역시 박경희 작가님의 어머님과 시어머님이 찾아와 딸의 그림을, 며느리의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뒷모습에 괜스레 뭉클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는 작가님의 모습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관람객들과 그림을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은 더 짙은 이야기가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작가님은 한 분 한 분과 나눈 이야기에서, 한 분 한 분이 남겨놓은 글선물에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뿌듯해. 지금 이 순간이 그리고 인생에서 이렇게 하나의 나는 이렇게 변화되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도전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우리가 버킷리스트를 하나 지웠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또 뭘 할까 막 이런 거 생각하니까. 너무 설레고. 내가 우리 친구들한테도 지나가면서 얘기했어. '미안해, 내가 너무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켜서 참 힘들겠다' 그런 얘기도 했었어. 덕분에 참 새로운 경험을 너무 많이 한다고. 친구들끼리 '자랑스럽다, 멋있다, 역시 너야!' 이런 얘기해 주는 것도 내가 그런 걸 좋아하나 봐. 욕심이 있나 봐. 맞아. '애들이 나보고 너는 늙지 않겠다' 그러더라고. 몸만 늙어 마음은 안 늙고. 할머니들이 그러잖아.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그 말이 뭔 뜻인지 요즘에 좀 알겠어.

- 박경희 작가

         

작가님은 요즘도 변함없이 틈틈이 걷는 곳곳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합니다. 박경희 작가님이 오래오래 풍경에 말을 걸며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집은 멈춰 있던 공간이 다시 쓰임이 있는 공간으로 재생되었듯, 무언가 잊어버린 꿈 혹은 잃어버린 꿈이 다시 재생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러한 기획 전시와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열겠습니다. 오늘도 소집은 당신의 꿈을 소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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