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지켜나갈 수 있는 이유
저는 단호하게 소는 '돈'이 키운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선철 문화기획자 &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 멘토
그동안 <소(所)는 누가 키우나> 영상 프로젝트를 제작하며, '소는 과연 누가 키우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건넸을 때 많은 분들이 답해주셨는데요. 그중에 가장 단호하면서도 현실적인 답을 해주신 분은 이선철 대표님이셨어요. 맞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모습과 여러 가지 스토리가 있겠지만 사실은 현실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요.
냉정하게 비즈니스 모델로만 보면 소집의 운영 방식은 말이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안 망하고 지속해 나가는 걸 신기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소집을 하고 2년쯤 지났을 무렵 어떤 분도 그러셨거든요. 1년이 못 가 망할 줄 알았다고요. 코로나19까지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 잘 되던 공간들도 줄줄이 폐업을 하고, 서울의 내로라하는 갤러리들도 문을 닫는 마당에 이렇게 버틴 게 용하다고요.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불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꿋꿋이 버틴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끔 그런 분들도 있어요. 전시가 끊이지 않고 열리다 보니 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인 줄 알았다고요.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원래 좀 사는 집인가?'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고, 커피, 미숫가루, 차를 파는 카페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뭘로 수익이 나는 거냐고 묻기도 합니다. 회사를 관두겠다고 상사에게 이야기했던 날에도 회사 나가면 뭘 해서 먹고살 거냐고 묻기도 했죠. 저에겐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이 되었어요.
돈을 좇아 사는 삶이었다면 고향에 돌아올 일도 없었겠죠. 훨씬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을 했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했을 겁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돈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은 살고 싶진 않습니다. '언젠가'를 꿈꾸다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거든요.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을 때 한 가지 뼈저리게 느낀 건, '언젠가'는 없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퇴사 후 홀로 떠난 두 달간의 여행에서도 그랬어요. 마흔 살에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온 언니를 만나고, 3년의 세계 여행 계획을 잡고 1년째 여행 중인 분을 만나고, 그렇게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을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동안 뭔가 마음에 꽉 막혀 있던 게 풀리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여행 이후 삶을 대하는 자세가 좀 달라졌어요. 일단 해보고 싶은 건 하며 살자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안 해 본 것들을 다 해보고 있습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자는 쪽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좀 무모하기도 합니다. 공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낸 건 이런 마음 덕분입니다.
공간을 하고부턴 저를 좀 더 냉정하게 보는 눈이 길러지고, 객관화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객관적으로 저는 공간 경영자로서의 마인드는 빵점입니다. 너무 현실 감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균형감을 잡기 위해 문화예술 경영 공부를 시작했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다만, 경영자적 관점을 이해하는 마음은 좀 길러진 것 같습니다.
정말 공간이라는 거는 나를 너무 괴롭히기도 하고 나한테 진짜 힘을 많이 주기도 하는 것 같아.
- 이혜진 사진작가 & 사진 작업실, 들꽃 대표
얼마 전 이혜진 작가와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벌써 서로를 안 지도 8년이 다 되어간다며, 이렇게 버틴 게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고향으로 돌아와서인지 위기를 겪는 때도 비슷하고, 단계적 고민도 같아서인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읽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지역에선 청년이 무얼 한다고 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공간을 하기 전에도, 공간을 하면서도 여전히 느끼는 시선입니다. 무관심보단 관심이 낫고, 이제는 맷집이 꽤 길러져서인지 그런 시선에 큰 타격감은 받지 않습니다. 이혜진 작가도 이제야 비로소 지역에 발을 붙인 것 같다고 합니다. '이게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구나'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한 과정을 이겨나간 시간이 힘이 된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이혜진 작가의 말처럼, 공간은 정말 저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훨씬 더 힘을 많이 주기도 합니다. 공간을 한 덕분에 생각지 않은 경험을 하고, 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고, 그걸 해내는 성취감이 정말 큽니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것은 돈 주고도 알 수 없는 경험이니까요. 아직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삶인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그렇고요.
얼마 전 오랜만에 선미화 작가와 최소유(최지훈) 작가의 공간인 평창 미지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이혜진 작가, 마혜련 작가와 함께 다녀왔는데요. 모두가 소집에서 한 번씩 전시를 연 공통점이 있기도 해서 소집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 것은 '편안하다'였어요.
나는 우선 소집해서 하는 데 부담이 없었어요. 진짜로 이곳을 방문해 주는 사람들 자체가 굉장히 열린 마음이고, 호의적인 마음이고, 따뜻한 마음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훈 씨한테도 전시를 추천을 했던 것 같아요.
- 선미화 작가
저는 지금까지도 소집이 계속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는 것엔 작가의 역량이 되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공간은 작가가 전시를 해야지만이 살아있는 공간이기에 무엇보다 작가들이 편안해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각 예술 전공자도 아니고, 갤러리를 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이런 공간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지지를 해준 사람들도 초창기에 강릉에서 함께 협업을 하며 만나게 된 작가들이었습니다. 그 작가들이 초반에 소집에서 전시를 기꺼이 열어주었고, 그게 또 동료 작가들한테도 연결이 되어 소집을 찾는 분들이 늘어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여전히 제게 큰 힘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전시를 보러 꾸준히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공간은 오늘도 숨을 쉽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집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집은 여전히 돈을 잘 버는 공간은 아니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귀한 만남이 있고, 그러한 시간 속에 귀한 이야기를 쌓아가며 공간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저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그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진 덕분에 고향에서 8년째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이렇게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부디 따끔한 충고보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많은 지지와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한 작가님이 묻더군요. 어떻게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있냐고요. 이 일이 저는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두려운 것은 재미를 잃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삶입니다. 만약,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게 된다면 그 일에 도전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새로운 도전에 아직은 큰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소집과도 작별을 고하는 날이 오겠죠. 그날이 왔을 때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작정입니다. 이 시간이 유한해서 더 절실해지는 하루하루니까요.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소는 결코 혼자 키워갈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함께 키워준 사람들이 있어 나아갈 수 있었고, 앞으로도 허락된 날들 동안 함께 무럭무럭 키워가고 싶습니다. 많이 많이 소집으로 소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도 소집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완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