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는 오도리공원의 길이가 동서로 1.5km 정도였다. 무리가 될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주말 오전 6시대라 도로에 차도 없어, 횡단보도가 많은 오도리공원을 달리기는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삿포로 TV 타워 앞 계단에 올라가서 오도리공원 사진을 찍었다. 확실히 전망대 위에서 찍은 것처럼 공원 전체가 조망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강렬한 홋카이도의 햇살이 공원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까 지나갈 때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젊은 이들의 그룹은 어느새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멀리서 오도리 공원을 달리는 러너들이 보였다.
오도리공원 동쪽 끝 삿포로 TV 타워 앞 계단에 올라 오도리공원 사진을 찍었다. 오도리공원 전체가 조망된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오도리공원이 여러 개의 블록으로 구성되어 사이사이에 횡단보도가 많아서 굳이 오도리공원을 달리는 러너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있었다. 괜히 또 반갑다. 혹시나 아무도 달리지 않는 오도리공원을 혼자 달리는 괴짜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탁! 탁! 탁! 탁!'
발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이다.
30분 이상 달리면 어느 순간 달린다는 움직임이 걷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달리게 된다. 오도리공원을 달리면서도 마치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으로 달렸다.
오도리공원은 일본의 길 100선, 일본의 도시공원 100선, 일본의 역사공원 100선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공원이다. 라일락, 느릅나무, 느티나무를 비롯한 92종, 약 4700그루의 나무가 있을 정도로 공원 전체가 잔디밭과 화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또한 삿포로 눈축제, 삿포로 라일락 축제, 요사코이 소란 축제, 삿포로 여름 축제, 삿포로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등 각종 축제나 행사가 오도리공원에서 개최된다. (출처: 위키백과)
오도리공원은 공식적으로는 양 끝의 삿포로 TV 타워와 삿포로시 자료관이 있는 블록은 오도리 공원으로 치지 않는다 한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위에 두 명소가 있는 블록까지 포함하면 총 12개의 블록으로 되어 있다. 즉, 오도리공원을 달리면 11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오도리공원을 달리면서 느낀 점은 각 블록마다 참 잘 꾸며놨다는 것이다. 삿포로 TV 타워 앞 블록에는 'SAPPORO'가 새겨진 유리 벽이 있어, 관광객들이 삿포로 TV 타워 앞에 'SAPPORP' 글자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이 앞에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다른 블록에서는 분수대를 꾸며놓았다. 또한 공원가에 벤치나 분수 옆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공원에서 쉬기가 좋았다. 각 블록마다 다르게 꾸며놓아 '다음 블록은 어떻게 꾸며놓았을까?' 기대하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한참을 서쪽으로 달리면 무대가 세워져 있기도 하고, 노상 상점들이 모여있는 노천카페 블록도 있었다. 오도리공원 끝자락에 가면 유럽 정원을 연상케 하는 성큰가든(Sunken Garden)이 나온다. 그리고 그 건너 근대 유럽 건물을 양식의 삿포로시 자료관이 있다. 성큰가든에서 삿포로시 자료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근대 유럽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오도리공원에서 서쪽 끝인 성큰 가든과 그 뒤의 삿포로시 자료관을 찍은 모습.
오도리공원에서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속도를 내면 몇 걸음 가다가 횡단보도를 만나게 된다. 관광 모드로 천천히 둘러보며 달리기 딱 좋은 곳이 오도리공원이다.
오도리공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달리고 북쪽을 향했다. 구글맵을 보니 바로 한 블록 왼쪽(북쪽)에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이 있었다. 내친김에 홋카이도대학 식물원 주변을 달렸다.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은 오도리공원 서쪽 끝인 성큰가든에서 삿포로역 방향인 북쪽으로 두 블록 올라가면 나온다.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1km 정도 되는 것 같다. 가로와 세로로 세 블록 씩이다. 식물원의 서쪽 담장을 따라 달렸다. 담장 안쪽으로는 역시나 우거진 나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담장 바깥 부분에는 바로 안쪽의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안내판이 조그맣게 붙어있다. 일본 사람들의 섬세함이란.
그렇게 서쪽 담장을 향해 달려가는데 담장 안쪽에서 발 앞으로 무엇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지나가는 물체를 보니, 붉은 털의 작은 여우 한 마리가 쏜살같이 도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니 이미 여우가 저만치 달려가고 있을 정도로 빨랐다. 여우가 달려가는 방향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땅 위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여우가 달려오는 기척에 날아갔다. 그리고 여우는 계속해서 새들을 쫓아갔다. 아마 식물원에 사는 야생 여우 아니었을까? 사람 손이 안 닿은 것은 확실했다. 마치 한국에서 보이는 유기견처럼 삐쩍 말랐다. 삿포로에 와서 난생처음 여우까지 봤다.
식물원이 세 블록에 걸쳐 있어 달리기가 편했다. 저쪽에서 두 명의 러너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도 지역 러너들이 애용하는 러닝 코스가 아닐까 싶었다. 식물원 코너에서 오른쪽(동쪽)으로 꺾어 울타리를 따라 달리니 호텔이 나왔다.
만약에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을 안 가고 오도리공원만 달렸다면, 삿포로역에서 대로를 따라 오도리공원까지 간다. 오도리공원에서 삿포로 TV 타워까지 세 블록을 달리고, TV 타워를 돌아서 서쪽의 삿포로시 자료관까지 달리면 2km 정도 거리다. 그리고 삿포로시 자료관에서 북쪽으로 두 블록 가서 식물원 서쪽과 북쪽 담장을 따라 달리면 2km 해서 4km~5km 코스가 나온다. 이 정도면 오전 조깅으로 달릴만한 것 같다.
삿포로에서 셋째 날 내가 달린 거리는 도요히라강 녹지공원과 오도리공원을 포함해 9.5km였고, 1시간 15분 동안 달렸다. 관광 모드로 천천히 달렸더니 몸이나 호흡에 무리는 없었다. 게다가 횡단보도마다 잠시 쉬니 달릴만했다. 그리고 낯선 길을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3박 4일 일정동안 목표로 했던 홋카이도대학, 도요히라강 녹지공원, 오도리공원을 달렸다는 사실에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