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올봄 퇴직하면서 공부방 가구 재배치를 시도했다. 새로 책장을 들이면서 설 자리를 잃은 나무 탁자가 하나 생겼다. 남편은 뭐든 당장 쓸 일이 없으면 바로 버리는 데 익숙하지만 난 사소한 것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활용할지 당장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구석에 모셔둔다.
아니나 다를까 멀쩡한(항상 내 눈에만 그렇다) 탁자를 딱지 붙여 내놓으려는 남편을 말리다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거실 창가에 두면 다탁으로 쓸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탁자를 창가에 붙여놓고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아본다. 고층 창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꽤 좋다며 흡족해하는 남편을 보며 몇 년 전 드레스룸에 넣어뒀던 의자 2개를 꺼내놓았다.
다탁은 슬그머니 식탁의 역할을 빼앗았다. 처음엔 아침 식사만 했다. 그러다 저녁도 창가 다탁에서 하게 됐다. 여름 해가 서서히 하늘을 물들이는 풍경 속에서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는 일은 꽤 괜찮았다. 주방 쪽 식탁에서 보는 창밖과 창가 바로 옆에서 보는 창밖 풍경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야가 달라지니 생각도 달라지는 걸까. 다탁이 놓인 창가 양쪽 끝엔 남편과 내 책장이 각각 놓여 있었다. 그사이에 놓인 다탁에서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책장의 시집이 남편 눈에 띄었나 보다.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시집을 꺼내 들었다. 아침저녁 시 한 편 어떠냐며 직접 고른 시를 낭송했다.
조용한 일
김 사 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창밖엔 아직 물들지 않은 깃털 같은 구름들이 펼쳐져 있었다. 남편이 낭송한 시를 되뇌는데 잊고 있었던 뭔가가 가슴속에서 뭉클댔다. 엄마의 와병 이후 아주 오래도록 감사를 잊고 살았다.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 모르는 신에게 온갖 원망과 분노를 터뜨리며 지냈다. 새벽녘 깜빡 잠들었다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누군가를 밀쳐내다가 눈을 뜨기도 했다. 원망과 분노 사이사이 때론 끝도 없이 추락하며 허우적대던 시간이 길고도 길었다.
간단히 차린 저녁상에 시 한 편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전의 무수한 저녁과는 다른 특별한 시간을 누리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저녁 시 한 편이 나를 지탱하는 든든한 양식이 돼 주었다. 한 달도 더 전인 여름날 저녁의 한순간이 창가 탁자 앞에 앉기만 하면 내 앞에 펼쳐진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