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모 Jan 17. 2020

비워진 책장

2020년 1월 15일

비워진 책장


따듯한 주황빛을 내는 스탠드를 켜고 대학생 때부터 덮어오던 붉은 이불을 두르고 자기 전 침대 머리맡에 두며 조금씩 읽는 영성 책을 읽으며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어린 시절 나는 침대에 눈을 감고 십초를 세면 다음 날 아침이 온다고 믿을 정도로 머리를 침대에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는 아이였다. 특별한 방법이 없어도 누구보다 일찍 잠에 들었고 다른 사람의 잠꼬대나 코골이를 들어본 기억도 없다. 이건 나만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침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옷 방 및 서재에서 저녁 내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침실에 왔음에도 또 책을 읽는다. 잠들기 싫어서. 그렇게 책으로 시간을 때우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세상에 모든 게 잠들어버린 창 밖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사라졌으면 내가 사라진다면 잠깐만이라도 이 자리에 없었던 듯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나는 가끔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흔적도 없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나조차 내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근대 오늘은 아니다. 오늘만큼은 오늘의 내가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취업에도 쓸모없는 과거의 내가 말이다. 작년부터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과거 이력이 쓸모없는 이력이 된 느낌을 받는다. 과거의 내가 해왔던 모든 일, 직장, 활동, 시간이 취업이라는 구멍에 적합하지 않은 열쇠라고 여겨진다. 내가 꿈꾸는 출판사라는 문에는 적합하지 않은 열쇠, 그러나 내가 꿈꾸지 않은 종교계에도 어중간한 열쇠. 나는 괜히 부아가 났다.


‘이놈의 자식은 서른이 되어서야 꿈을 찾다니, 남들 다 자리 잡을 때 새로 시작해야 한다니.’


새벽 두시, 짜증이 날만큼 난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쿵쿵거리며 서재로 향했다.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 인생이랑 긴 빨대가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구부러져서 아메리카노도 제대로 끌어당기지 못해 흡흡 거리는 꼴이 아니라, 모카 프라푸치노의 자바칩도 쭈욱 끌어올릴만큼 쭈욱 펴졌으면 좋겠다. 과거를 지우고 싶은 욕망은 인생이 성공했으면 하는 욕망과 이웃이다.


서재 바닥에 손때 묻은 기독교 책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바닥에 풀어 놓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책, 침실에 놓아둔 책. 종류도 다양하다. 신학책, 논문집, 설교집, 성서책, 교육책, 상담책, 영성책, 에세이집, 기도문, 역사책 등. 대부분의 책은 누렇게 바랬고 책머리에는 케케묵은 먼지가 가득하다. 책은 노인과 같아서 손이 닿지 않는 책은 급격하게 늙는다. 책이 젊기 위해서는 더러워지더라도 자주 만지고 줄을 치고 낙서하는 게 좋다.


나는 바닥에 박스 두 개를 옆에 두고 쓸모 있는 책과 쓸모없는 책을 나눈다. ‘이 책은 필요 없어, 이 책은 쓸모 있어.’ 과거의 나에게 화풀이 하듯. 취업이 나의 과거를 쓸모에 따라 판단했듯 나도 책을 쓸모에 따라 판단한다. 부정당한 내가 다른 무언가를 부정하며 위로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 책도 그 당시에는 필요한 책이었다. 읽어야할 책이었고 나를 더욱 확장시켜줬던 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필요가 채워지고 쓸모가 다하자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또 손을 머뭇거리게 하는 책이 있다. 분명 쓸모가 없는 책이다. 그러나 내가 애착했던 책이다. 닳고 달아 책 끝이 너덜너덜하고 내지에는 색색 볼펜으로 그어진 밑줄과 내 단상이 가득 적혀 있었다. 한참을 골몰히 고민하다 아쉬운 마음에 책장 한편에 다시 끼어 넣었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쓸모를 넘어 그 이상의 마음이 가득한 것들이다.


버릴 책, 두 상자를 신발장 앞에 두고 상념에 빠진다. ‘일단 여기까지. 버리는 건 다음에 하자.’ 나는 끝내 박스들을 버리지 못하고 서재에 들어와서 책장을 훑어본다. 칼에 이가 빠지듯 군데군데 빠져버린 빈 공간과 무거웠던 과거를 버티다 휘어버린 책장의 선반이 보인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며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저 빈 공간을 채웠던 책들 덕분이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앞으로 저 공간을 새로운 책으로 채울 의욕이 맞물려 섞인다. 그러나 이거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욕망에 책장을 비워내도 휘어진 책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10화 목적 없는 인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